최덕수 목사 서신

12,262 2015.06.28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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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현산교회 성도님들,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

6. 2(화)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지 벌써 3주일이 지나고 4주차로 접어들었네요. 미국에 온 첫 날, 저희는 시카고에 사는 처남 집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다음날 미국 동부 지역과 미 동부와 접경한 캐나다 동부를 돌아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여행 중에 토론토 한인교회를 담임하는 이부형 목사님(손숙영 성도 사위)과 연락이 닿아 이 목사님과 2 시간가량 반가운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민교회라는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목회를 잘 하고 계시더군요.

본래는 미국 동부 여행을 마치고 뉴욕에서 시카고로 갔다가 하루 밤 지낸 후에 아내 친구가 살고 있는 아틀란타로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상 악화로 시카고 행 비행기가 뜨지 않는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당황해 하다가 항공사 직원의 안내를 받아 시카고에 들리지 않고 곧 바로 아틀란타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 친구인 양재란 사모의 남편(양성우 목사, 애틀란타 온누리 교회 담임)은 캘리포니아에서 6년 전에 아틀란타로 와서 목회하고 있는 분으로 1995년에 한국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아틀란타 온누리교회 예배와 성경공부에도 참여하고, 온누리교회 성도님들로부터 몇 차례 식사 대접도 받았습니다. 교인들의 상당수가 세탁소, 건축, 식당 일 등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봉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양 목사님의 배려로 아틀란타에 있는 동안 3박 4일 일정으로 아틀란타 온누리교회와 같은 교단에 속한 교회가 있는 찰스턴(charleston)에 갈 수 있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찰스턴은 아틀란타에서 동남부 방향으로 500km 정도 떨어진 곳(서울-부산보다 먼 거리)에 위치한 곳으로 차를 렌트해서 갔습니다. 미국에 처음 온 터라 네비게이션을 보며 운전하는 일이나 셀프 주유를 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5시간 반 운전 끝에 찰스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찰스턴 진리교회를 담임하는 임경묵 목사님을 만났고 임 목사님의 배려로 그 교회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에서 3박 4일 동안 지낼 수 있는 편의를 제공받았습니다.

찰스턴으로 간 6. 17(수)일 저녁에 찰스턴 진리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드렸는데, 저희가 예배드리던 바로 그 시간에 흑인들이 출석하는 엠마누엘 아프리칸 감리교회(historic Emanuel African Methodist Episcopal church)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수요일 저녁 성경공부 시간에 백인 우월주의자가 여성 3명, 남성 6명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 자체가 주는 충격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일은 범인에 의해 죽임당한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범인(Timothy Johnson)을 용서한다고 발표한 일이었습니다. 신앙이 일상적인 삶속에 녹아들어 있는 성숙한 반응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찰스턴에서 3박 4일을 지내면서 이틀 동안 찰스톤 시내를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찰스턴은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 불리우는 곳으로 명성에도 걸맞게 시내 곳곳에 교회당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저희는 위그노(프랑스 개신교도)가 세운 오래 된 교회당을 비롯하여 몇 교회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도시에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많았지만, 그곳에 흑인 노예들을 사고파는 노예 시장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찰스턴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그 다음 날인 6. 21 주일에는 양성우 목사님의 부탁으로 애틀란타 온누리 교회에서 1, 2부 예배 때 설교를 하였습니다. 애틀란타 온누리교회는 여름마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 지역으로 단기 선교 나가는 일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었고, 중고등부 학생들도 7월 초에 시카고 빈민가 구제 사역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찰스턴 진리교회 임경묵 목사님과 애틀란타 온누리교회 양 목사님이 속한 교단은 A.B. Simpson 목사(통일찬송가 408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의 작사자)가 만든 C&MA(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라는 교단인데 성경적이면서 선교에 열정을 가진 교단이었습니다. 두 분 목사님은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복음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올바로 목회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분들이었습니다.

6. 21(주일) 오후에는 아틀란타에 개혁교회(reformed church)가 있는지 구글로 검색해서 아틀란타 다운타운(downtown)에 있는 ‘atlanta presbyterian fellowship’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이 교회를 가게 된 것은 제가 검색한 교회 중에 유일하게 저녁 예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햄버거와 수박 한 쪽을 먹고 6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예배 전에 성경구절 15개 정도를 함께 낭독하고 소요리문답 1-15문까지 교독한 다음,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상한 점은 그 교회 교인들이 흑인 10대 아이들이 십 여 명 정도 되고, 그 나머지 성인 십 여 명은 백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인이 백인이라면 아이들도 백인이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알게 된 사실은 그 교회 흑인 아이들은 가계(family tree)가 복잡한 자녀들로서 백인 성도들이 빈민가에 사는 흑인 아이들을 데려다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배 후에 ‘atlanta presbyterian fellowship’ 교회를 담임하는 Dr. Frank J. smith 목사님과 잠시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smith 목사님은 미국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학교에서 M.div를 하고 뉴욕대학교에서 미국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은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이 할렘가의 한 집에서 작은 강대상 하나 놓고 흑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 교회를 통해 도전을 받은 일은 이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날(6. 21)은 주일임과 동시에 미국인들이 아버지 날(Fathers day)로 지키는 날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들이 오후 예배를 드리지 않든지, 아니면 오후에 특별한 행사를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smith 목사님께 “오늘 Father`s day 인데 이 교회에서는 그와 관계된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주일(Lord`s day)이니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예배 후에는 작은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함께 간 양재란 사모의 핸드폰(아이폰 6)이 없어진 일이었습니다. 마침 아이폰에 위치 추적 장치가 있어 핸드폰을 찾았는데 알고 보니 smith 목사님과 대화하는 도중에 교회당 가까이에 사는 한 아이(이날 처음 교회 나왔다고 함)가 훔쳐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핸드폰을 찾아오면서 마약하고 남의 물건을 훔치는 흑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목회하는 smith 목사님과 이 일에 함께 동역하는 분들에게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군요. 애틀란타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는 6. 23(화) 저녁에는 예수전도단(YWAM)에서 함께 훈련받은 이요셉 형제 부부를 25년 만에 만나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이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7. 1)에는 예수전도단에서 함께 훈련을 받은 신현지 자매 가정이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산호세(San Jose)로 갑니다. 저희는 그 가정에서 한 달 가량 지내게 될 것입니다. 한 가정의 주부로서 한 달 동안 손님 수발을 하며 지내는 일은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텐데 저희가 그 가정에서 지내는 일을 기쁨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감사한 일은 신현지 자매의 남편 조준호 성도가 저희 교회 홈피에서 제 설교를 들으면서 저에 대한 호감을 가지고 있어서 저희가 그 가정에서 지내는 일을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에도 평안하게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장로님들과 강도사님과 전도사님,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주안에서 뵐 때까지 늘 평안하시길~~

미국 시카고에서 최덕수 강정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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