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4일 주일밤예배 기도문

1,790 2022.12.18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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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와 주권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시고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닮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창초에 저희의 첫 부모는 하나님이 만드신 가장 아름다운 세상 가운데에서, 그 어떤 죄의 얼룩이 없던 바로 그곳에서, 자유롭고도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을 창조하신 당신의 의지와 주권을 찬양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가장 자유롭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던 그때 저희 모두는 아담 안에서 무한하신 주님 앞에 무한한 죄를 범했습니다. 이제 저희 모두는 죄가 익숙하고, 죄가 자연스럽습니다. 본성은 기울어졌고, 본성은 율법에 매이면서도 거부하는 모순을 항상 안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저희들의 악함을 보시옵소서. 창조된 만물을 보면서도 당신의 아름다움을 더듬어 찾지 않는 무지부터 시작해서, 본성의 가장 은밀한 곳에 깃든 죄를 향한 관성까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죄악들, 곧 주님께서 차마 보실 수도 없는 수많은 죄악들이 저희들 안에 상존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한순간도 주님 앞에 범죄하지 않는 순간이 없으며, 행위로 특정한 죄를 범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존재 그 자체로도 당신의 진노의 손길에 의해 매순간 죽어야 할 합당한 이유를 저희 안에 무수히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로도 이 죄악이 얼마나 끈질긴지 모릅니다. 기울어진 본성을 주님 앞에 앉게 하는 데까지 너무나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죄를 짓는 데에 있어서는 지성과 정서와 의지가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듯 그렇게나 합이 잘 맞는데, 당신을 기뻐하고, 당신의 말씀을 누리고, 당신이 기뻐하는 것을 하고,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며 멀리하는 데에 있어서는, 지성과 정서와 의지가 어찌 그리도 합이 안 맞는지 모릅니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죄에 대한 끌림을 주장하는 정서와 의지의 이끌림들이 저희를 피곤하게 하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넘어지고 나서 주의 은혜를 가까스로 붙들어 일어나고 나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도 죄는 쉬지 않고 죄를 향한 저희의 본성의 끌림도 도무지 쉴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 그리하여 이러한 싸움의 한복판에서 피곤하고 기진해질 때가 많으며, 때때로 자신이 없어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잘할 수 있을까, 당신의 은혜를 붙잡아도 될까 하는 등의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생각들이 저희를 압도하여 고꾸라진 바로 그 지점에서 더더욱 고꾸라지려고 합니다.

하나님 그러나 분명히 아는 사실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모든 것을 아시오매 우리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알 수 없고, 우리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우리 스스로 정직하게 진술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당신은 아십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당신 때문에 흘리는 수많은 눈물들을 당신의 병에 마지막 날까지 계수하시는 줄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죄인이라는 칭호도 어쩌면 저희들에게는 존귀한 칭호일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들에게 그 어떤 악한 명사를 갖다 붙여도 저희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바로 이런 악한 죄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십니다. 당신의 능력의 크심을 드러내시고, 의지의 자유로움을 드높이시고자 사람의 주장을 결코 받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능력으로 저희를 계속 붙드시고 마지막 때까지 지켜주시옵소서.

비록 저희가 이렇게 하찮기 그지없지만, 이런 작은 저희들 안에서 은은하게 드러난 당신의 능력을 찬양합니다. 죄에 대한 씨름들, 고꾸라지더라도 이유는 알 수 없게 어떻게든 당신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마음들,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실천해본 사랑들, 이 모든 것들이 당신께로부터 온 것이니 오로지 하나님 당신만이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하나님 이런 저희 각 개인이 혼자 하나님을 사랑할 힘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에 주신 지체들에 감사드리며 이들을 위하여 또한 기도합니다.

먼저 아직 주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 육체적으로 어린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드립니다. 저희들은 그들 안에서 주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지 못합니다. 비록 인식이 늦게 생겨서 주의 말씀을 알아듣는 데에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가장 미련해 보이는 작은 것들을 모아서 가장 큰 은혜로써 꽃을 피우시는 줄을 믿습니다. 부모의 따뜻함, 교회의 정, 엄위한 예배 시간, 그 외의 수많은 눈맞춤과 사랑의 교류들이 그들을 위해서 차곡차곡 쌓이는 줄을 믿습니다. 아이들을 주님께서 뜻하신 가장 적절한 때와 장소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그들이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아이들로 자랄 수 있도록 지켜주시옵소서. 비록 그들 중에 그렇지 못한 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부모로써 낙심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물론 이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압니다. 부모로써 생명을 잃어가는 자녀를 보며 어찌 마음이 안 아플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마지막 때가 올 때까지 항상 포기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학생들로서 아직 부모님 아래에 있는 지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많은 고민들이 있을 줄 압니다. 이들의 고민을 주님께서 친히 헤아려 주시옵소서. 그들도 이런 고민들을 친구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부모님 앞에 건전하고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부모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에 날이 서 있다면 그것이 무뎌질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또한 간구드립니다.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사회에 막 나가서 생활을 시작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청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청년의 때에 주님을 알 수 있는 많은 시간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과 그것을 위한 준비 때문에 주님을 아는 시간들을 놓칠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를 지나는 지체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여 주셔서, 신앙과 신앙을 갖고 살아가는 삶을 분리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신앙으로 살아가는 모든 삶의 국면들을 지혜롭게 조화시킬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애매한 선택의 순간들 때문에 혼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을 줄 압니다. 사회에서의 요구가 적나라하게 나쁜 것으로 드러나면 선택하기 참 쉽겠지만, 시대가 점점 갈수록 요구가 애매해지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는 줄 압니다. 그런 때에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러지게 하여 주시되, 또 그렇다고 해서 선택을 회피하거나, 신앙으로 무언가를 결단하는 순간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결혼을 준비하는 지체들에게는 서로가 원하는 상대를 찾는 열심보다는 자신이 주님 앞에서 아름다운 자로 서기 위한 노력들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사랑을 하기 위한 노력들, 배려를 하기 위한 노력들, 인내하기 위한 노력들, 이해하기 위한 노력들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서 미래에 주님께서 주시는 누군가에게 주님께서 거저주신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다양한 책임의 영역에서 애를 쓰고 그 책임들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자 하는 남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 책임들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놓칠 수 없는 것 때문에 오는 압박감들이 적지 않은 줄 압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가정도 돌봐야 하고, 신앙의 내용도 놓칠 수 없고, 그 외의 수많은 관계들에서 적절한 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써야 하는 등, 많은 복잡한 상황들이 이들에게 놓여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에서 때때로 신앙의 내용을 포기하고자 하는 유혹도 받곤 합니다. 그 내용을 노골적으로 단번에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물러설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 남성도님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때로 이런 미혹을 받을 때에 그것을 향해 대항하고 씨름하다 보면 오는 피곤함 때문에 자신이 없어질 때도 많습니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도 많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익숙했던 것이 없고 처음으로 해 보는 것들도 많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들도 많습니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모든 관계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정체성들이 어느 것 하나 익숙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압박 가운데에 주님 앞에 겸손함으로 엎드러져 간구하고, 지혜롭게 주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을 지켜주시옵소서.

외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마음의 숨겨진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가꾸고자 애쓰는 여성도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창초에 범한 첫 부모의 죄로 인해 여성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많이 깨어졌습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부부 관계에서 남편은 아내의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신경써야 할 대상으로 바뀌어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섬길 대상이 아니라 눈치를 볼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상황이 저희들 가운데에서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입니다. 여성도님들이 사회의 풍파 가운데에서 이런 죄악된 소리들을 걸러서 듣고, 성경적인 여성상이 무엇인지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지혜롭게 가꾸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저희 모두가 참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인 저희의 참 남편 되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분의 성품을 닮고자 애쓸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마음을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시대가 가면 갈수록 점점 상황은 악화될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은 점점 이상해져 갈 것이고, 심지어 저희들도 그런 시대의 목소리에 은연 중에 빠져들어 언제든지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줄 압니다. 하나님 저희 모두가 깨어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주신 관계 중 가장 중요한 관계인 남녀 관계, 특히 부부 관계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지킬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오죽하면 주님께서 이것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의 모형으로서 말씀하셨을까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의 아름다움을 항상 저희가 묵상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추상의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저희들의 삶에 실제로 적용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더욱 느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주님께서 주신 이 땅의 삶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연로하신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섭리적으로 이끌어오신 삶의 질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희가 한 지체로서 감히 기도하옵는 것은 주님을 다시 뵈옵는 날이 가까워 올수록, 사망과 죄가 저희를 더욱 괴롭히는 가운데에서도, 그들의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죄는 육체가 점점 아파질수록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운 것으로 더욱 강하게 제시할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말씀을 가까이하며, 그 하찮은 죄의 거짓말을 어떻게든 듣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주님을 다시 뵈옵는 그날을 더욱 사모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만 저희 모두는 다 죄인이어서 육체가 아플수록 괜시리 슬퍼지고, 왜인지 모르게 두려워집니다. 만약에 그런 두려움이 다가오면서도, 그런 두려움이 죄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버지 앞에 나아가 더욱 의지하고 그분의 은혜를 바랄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는 결국 다 죽음에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그 뒤에 있는 죄로부터의 온전한 해방과 함께 뵐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기대합니다. 지금 저희의 수많은 죄와 연약함 때문에 가리워진 주님의 영광이 그때에는 지금 저희가 공기를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처럼 느끼게 될 줄 압니다. 그때에는 죄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될 것이며 눈물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에 생각나지 않는 것이 될 것입니다. 죄 때문에 겪었던 수많은 고난과 고통이 잊혀지고, 그토록 씨름하며 바라보고자 했던 주님의 아름다우심도 온전하게 보게 될 줄을 믿습니다.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성도님들 모두가 포기하지 않고 이 땅에서 죄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제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을 듣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인 사역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설교라는 수단, 어쩌면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장 미련해 보이는 수단으로 죄인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사람의 입술로 주의 말씀이 전해지기 때문에 업신여기기 쉬운 시간인 줄 압니다. 또한 사람의 입술로 주의 말씀이 전해지기 때문에 사람만을 좋아할 수 있는 시간인 줄도 압니다. 하나님 저희가 이 지점에서 속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역자가 전하는 주님의 엄위한 말씀에 집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사랑하는 사역자들도 주님의 말씀을 지혜롭게 연구하여 가감없이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를 위해서 그들에게 가장 적절한 섭리적인 손길들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 섭리 안에서 담대할 수 있는 인내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말씀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가장 적절한 물리적인 필요도 채워주시옵기를 간구드립니다.

또한 저희 성도들도 사역자의 입술로부터 나오는 주의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하게 듣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매번 듣는 말씀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들을 가능성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는 심정으로 이 예배 자리에 나와 주의 말씀을 기대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예배 시간에 들리는 전체 말씀 중 가장 작은 한 말씀이라도 듣는다면, 그것으로 주님께서는 죄인들을 생명으로 이끄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신 줄을 믿습니다. 주님 이 예배 시간을 지켜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는 죄인이옵나이다. 저희의 마음을 지켜주시옵소서.

이 모든 것을 저희의 모든 것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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