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

7,001 2021.01.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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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역사신학』이라는 평범한 제목이 붙은 이 두 권책은 전적으로 커닝함 박사가 강의하기 위해 준비한 원고들로 구성된 것이다. 그는 뉴 칼리지를 이끌고 있는 동안 교회사를 수강한 학생들에게 연례적으로 강의했으며, 그 강의 원고를 완벽한 형태로 남겨 두었다. 이 원고들은 세월이 지났음에도 일반적인 핵심사항들뿐 아니라 특별한 진술들조차도 변경할 것이 전혀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사소한 것들은 저자가 직접 신중하게 수정하였다.
커닝함 박사가 교수직에 임명되었을 당시에는 신학교의 교회사 수업에서 단순히 교회의 발흥과 성장에 대한 강의보다는 본질적으로 교회를 이끈 인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들에 연관되어 있는 교리적인 것들을 곁들인 강의를 하는 것이 전통이었고, 이것은 신학교 강당에서 변함없이 지켜 온 실천사항이었다. 그런데 교회사에 관련된 시민적이고 교회사적인 수많은 논문들과 교재들이 확산되면서, 현대 역사연구의 열매들로 인해 강의방법에 대한 불만족은 더해 갔고, 배우고자 하는 욕구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윌리엄 커닝함은 그 주제에 대한 목적을 달성하고자 다른 방향의 강의를 도입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교회사의 핵심과 상세한 내용파악을 위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교회사책을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그것들 중 한두 권을 그의 수업에서 구두시험을 위한 주교재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자주 반복되는 설명들은 가급적 피하고 교회사 그 자체보다 교회사로부터 반드시 익혀야 할 교훈들을 학생들이 깊이 새기도록 추구하였다.


<추천사>
이제 한국의 장로교들은 과거 기독교의 풍부함들을 내 것으로 소유할 때이다.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커닝함보다 여러분들을 잘 안내해 주기에 적합한 분은 아무도 없다. ...윌리엄 커닝함이 보여 주고 있듯이, 과거에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을 공식화하고 강론하고 변론하기 위해 많은 땀을 흘렸다. 이『역사신학』에서 커닝함은 한국장로교도들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였던 것에 참여하고 동시에 이 위대한 작업에서 각자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커닝함의 귀한 책이 한국의 장로교들 모두에게 다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 Joel R. Beeke 박사(미국 퓨리탄개혁신학교 총장)


<저자 소개> 윌리엄 커닝함(William Cunningham 1805.10.2.-1861.12.14.)
윌리엄 커닝함은 장로교회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사업을 하는 하밀톤과 언약도 페든Peden의 후손이었던 모친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계몽주의의 영향력 아래 급속히 식어가는 조국 교회의 신앙을 배경으로 사역하였지만, 훗날 그의 조상인 알렉산더 페든의 대중을 이끄는 지도력과 두려워할 줄 모르는 기질이 그에게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토마스 찰머스Thomas Chalmers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당시 스코틀랜드 교회는 장로교회의 체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어떤 면에서는 준국가교회semi-state church와 같았다. 이때 국가의 간섭을 반대하는 운동을 지도한 사람이 바로 토마스 찰머스와 윌리엄 커닝함이다. 이 운동이 10년간 지속되다가 마침내 1843년 5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스코틀랜드 자유교회Free Church of Scotland’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에 산파 역할을 한 장본인이 윌리엄 커닝함이다. 윌리엄 커닝함은 1847년부터 186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에딘버러에 있는 뉴칼리지의 학장으로 있으면서 탁월한 칼빈주의 신학자로서 면모를 조국 교회뿐만 아니라 유럽교회에 떨쳤다. 이 시기 스코틀랜드 교회는 역사상 가장 활발하고 왕성했던 칼빈주의 신학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방대한 학문적 식견과 심오한 개혁주의적 통찰력, 단호하고 적확한 사상적 표현력 등으로 그는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의 칼빈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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