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교회와 장로제도

16,980 2011.11.29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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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역사를 살펴보면 현실 교회가 부실해질 때마다 교회 내부와 외부에서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가정교회 운동이나 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관상기도 운동도 현실 교회가 안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일어난 운동의 일환이다. 이런 운동은 기존 교회가 갖고 있는 연약함을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도록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지만, 불필요한 제도로 인해 교회의 모습이 기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의 바른 해석에 기초하지 않은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출발된 제도임에도 실용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성경적인 제도를 도입할 경우, 그로 인한 폐해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십여 년 전에 일어났던 다락방 전도 운동이 그 좋은 예다.

가정교회 운동도 마찬가지다. 왜 많은 목회자들이 구역 모임이나 순 모임과 같은 기존의 소그룹의 틀을 깨고 가정교회로 전환하려고 하는가?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성도들을 돌아보고 섬겨야 하는 장로들이 장로 본연의 임무를 상실하고 대부분 교회 행정과 관련된 일을 하는 한국교회의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둘째는 교인들로 하여금 전도와 교제, 섬기고 돌보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기 위함이다. 기존의 틀로는 장로들로 하여금 교인들을 돌아보게 할 수 없고, 성도들로 하여금 전도와 교제와 봉사하는 일에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가정교회 틀로 전환하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교회의 체질을 바꾸려고 하는 시도 자체는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종국적으로는 교회와 장로교회 제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는 가정교회 모델로 교회의 틀을 전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성경적 원리를 따라 장로 제도를 운영하고,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말씀으로 가르치면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데도 비성경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지혜로운 처사로 볼 수 없다.

가정교회 모델로 전환했을 때 생겨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장로교 치리제도와의 마찰 현상이다. 장로교에서는 교인들을 돌아보는 일을 장로들이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세례교인 25명당 한 사람의 장로를 세울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런 필요를 위해서이다. 개혁교회는 이런 원칙을 따라 장로가 일정한 구역을 맡아 심방하고 이를 당회에 보고하고, 필요시에는 목사와 함께 심방하기도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런 장로 제도에 충실하게 성도들을 돌아본다면 근래에 호응을 얻고 있는 가정교회 운동이나 목양장로 제도는 불필요한 제도와 운동이 되고 만다.

장로가 아닌 목자를 통해서 성도들을 돌아보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교인들은 담임목사에 의해 세워진 목자와 더 친밀해지고 기존 장로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특히 목자의 역할을 맡지 못한 장로는 사외 이사처럼 교회 내의 영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되고 교회 행정에만 관여하게 된다. 교회 체질이 가정교회로 완전히 바뀌면 이런 부작용들이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모든 목자가 장로로 피택되지 않는 한, 장로교회 안에서 목자 제도는 ‘옥상(屋上) 옥(屋)’이 될 수밖에 없다.

담임목회자의 리더쉽이나 영향력이 성도들에게 먹혀들지 않을 때는 교회 분열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가정교회 모델을 도입해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들이라면 누구나 목장을 자신의 가르침과 치리 하에 두기를 바라지, 목사를 배제한 채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사역지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평신도들이 목회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전도하고 양육하고 교제하고 섬기기를 바라지, 평신도들끼리 독립된 형태의 교회를 이루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치리와 가르침 안에서 목장 모임이 활성화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담임목회자의 리더쉽이 흔들리거나 교회가 혼란스러워지면 각 목장 별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도 있고, 목장이 교회요, 목자가 곧 목회자라는 의식이 잘못 오용되면 자기 소견대로 행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실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다는 명목 하에 섣불리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만약 현실교회의 문제를 새로운 제도로 보완하려 한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제도가 필요하겠는가!

어떤 목회자들은 가정교회를 시작한 후에 불신자가 전도되고 성도들이 서로 돌아보는 교제가 활성화 되었다는 긍정적인 보고를 하기도 하지만,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가정교회를 시작해서 얻는 기쁨이 아니고 교회의 영적 체질이 바뀌었기 때문에 얻는 기쁨이다. 가정에 갓난아이가 태어나거나 새로운 식구가 들어오면 가정 분위기가 밝아지듯이, 소그룹 모임 안에 새로운 영혼이 전도되고 서로 돌아보는 일이 활성화되면 교회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만약 목회자가 이런 기쁨을 위해서 가정교회 모델을 도입하게 되면 당장은 그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나중에는 아픔과 각종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근래에 이런 문제점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나고 있다. 가정교회 모델로 전환한 교회에서 수년 간 목자로 일해 온 어떤 부부가 과도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이사를 가는 방식으로 교회를 옮기기도 한다고 한다.

해 아래 무슨 새로운 제도가 있겠는가? 가장 성경적인 제도인 장로 제도를 올바로 실행하고,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복음을 성도들에게 반복적으로 전함으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도록 힘쓴다면, 가정교회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이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이 될 것이다. 교회가 가진 연약함의 문제는 새로운 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제도를 올바로 시행하는 것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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