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과 목회

18,369 2017.04.2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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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선교단체 간사로 사역하였지만 구원과 믿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된 것은 합신에 입학한 이후였다. 개혁주의 신학이 가장 탁월한 신학체계라는 확신도 합신에서 공부하면서 가지게 되었고, 이런 확신은 더 견고해져갔다.

10년 동안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한 나는 2000년 11월에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으로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교회 개척을 시작하게 되었다. 개척을 하면서 좋은 것 중에 하나는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어느 때는 논문 한편이 몇 권의 주석이나 설교집을 읽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평소 신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을 지속했던 이유는 바른 신학 없이는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는 평소의 지론 때문이었다.

물론 신학과 신앙은 얼마든지 따로 놀 수 있다. 그리고 바른 신학이 언제나 바른 성도와 바른 교회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그의 책 ‘신앙감정론’에서 신학과 신앙에 대한 관심은 신앙감정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신학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칼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만 다를 뿐, 모든 신자는 예외 없이 자기 나름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 신학이 어떤 신학이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반드시 바른 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급수가 버들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바른 신학이 바른 신앙인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목회자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올바로 세우기 위하여 치열하게 신학공부를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목회와 신학’이란 잡지가 있지만 나는 ‘목회’보다 ‘신학’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하나님을 아는 일이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 목회사역은 신학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는 ‘목회보다 신학이 앞선다’ 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사람의 목회자가 신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목회의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교회를 개척한 후 시간이 좀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 깨달음을 얻게 된 과정은 이렇다. 교회를 개척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우리 교회에 등록한 한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1년 정도 있다가 인천으로 이사갔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우연한 기회에 이 분들과 네이트온으로 문자대화를 하게 되었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 도중에 ‘내가 자신들을 너무 따뜻하게 잘 돌아봐주었다’는 말을 하는 게 아닌가!

평소 마음이 따뜻한 목회자가 되기를 바랬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차였기에 “제가 별로 두 분께 잘 해드린 것도 없는데 어떤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분들이 내가 잠시 잊고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말해주었다.

현산교회당이 탄현동 상가 2층 건물에 있었을 때 이 부부가 1층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옷을 팔기 위해서는 좋은 옷을 진열해 놓아야 하고 이를 위해 수시로 남대문 시장에 옷을 떼러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아내는 파산 상태에서도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남대문 시장에 함께 따라갔다. 밤 11시 경에 남대문 시장에 도착해서 밤새 옷을 사서 새벽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남대문 시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들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고 도착해서는 함께 옷을 보고 구입한 옷 꾸러미를 들어 주기도 하였다. 많이도 아니고 딱! 한 번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이 분들이 한 번 한 일을 잊지 않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따뜻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한 번의 경험이긴 하지만 이 일을 통해 나는 냉철한 이성으로 신학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목회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 주님이 앞으로 얼마나 동안 목양할 기회를 주실는지 알 수 없지만 은퇴할 때까지 신학과 목회, 목회와 신학, 이 둘 중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는 목회를 하고자 한다.

* 이 글을 '합신은 말한다(통권 189호) 발행일: 2017. 3. 10'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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