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전하는 글 thoughts for young men / J.C 라일 (지평서원)

9,949 2015.07.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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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에게 전하는 글 thoughts for young men / J.C 라일 (지평서원)


1장 청년을 권면해야 하는 이유

바울 사도는 디도에게 목회자로서의 책무에 관해 조언하면서, 청년들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상으로 언급한다. 그는 노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나서,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딛2:6)라고 덧붙여 말한다. 나는 바울 사도의 조언에 따라 청년들에게 몇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지금 나는 늙었지만 젊었을 때 만큼이나 생생히 기억나는 일이 몇가지 있다. 젊은 시절의 기쁨과 슬픔, 희망과 두려움, 유혹과 어려움, 그릇된 판단과 잘못된 감정, 실수와 열망에 관한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나의 권면이 청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뿐 아니라 현세와 내세를 바라보는 관점을 왜곡시킬 수 있는 죄와 실수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감사할 것이다. 이 책에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크게 네 가지이다.

1. 청년들을 권면해야 하는 이유
2. 쳥년들이 빠지기 쉬운 위험
3. 청년들이 받아들여야 할 조언
4. 청년들이 따라야 할 특별한 원칙

이 네 가지 요점을 순서대로 살펴볼 생각이다.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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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권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몇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청년을 찾아보기가 어렵기 대문이다.
오늘의 현실은 불행히도 어디를 둘러보아도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청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점은 특별히 차등을 두어 말할 필요가 없을 만큼 모든 청년에게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성품이 온유하든 거칠든, 교육을 받았든 못 받았든, 도시에 살든 시골에 살든 별반 차이가 없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는 청년(요16:13 참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을 걷는 청년(마7:14 참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청년은 좀처럼 볼 수 없다(마16:24 참고). 참으로 두렵고 슬픈 현실이지만, 하나님이 생각하시기에도 내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은 진실이다.

청년들이여, 여러분은 이나라의 인구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회 계층에 해당한다. 그런데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어떤 상태인가? 어디를 둘러보아도 대답은 한결같다. 충실한 복음 사역자 중 아무에게나 묻고 그 대답을 들어보라.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 중 성만찬에 참여하는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되는가? 누가 구원의 교리를 가장 크게 거스르는가? 누가 주일 예배를 가장 소홀히 여기는가? 누가 성경공부나 기도 모임을 가장 멀리하고, 설교 말씀에 가장 무관심한가? 교인들 가운데 어떤 부류가 사역자를 가장 염려하게 만드는가? 르우벤처럼 깊은 '마음의 성찰'이 필요한 이들은 누구인가? 양 떼 가운데 가장 다루기 힘들고, 경고와 견책이 가장 필요한 이들이 누구인가? 누가 사역자를 가장 슬프고 불편하게 만드는가? 사역자가 늘 가장 걱정하고 가장 절망하는 영혼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 대답은 단연코 '청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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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것이 곳곳에서 목적되는, 부인할 수 없이 명백한 현실이다. 참으로 두려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걷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청년을 볼 때마다 두려움이 앞선다(마7:13 참고). 현시링 이렇다 보니 내가 청년들을 권면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청년들을 권면해야할 이유가 충분하고 명백하다.


2. 죽음과 심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심판이 청년들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그들은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청년들이여, 죽음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비록 매우 강하고 건강하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날이 그다지 멀지 않다. 노인들은 물론 청년들도 병에 걸려 고생한다. 나는 노인만이 아니라 청년의 시신도 많이 묻어 보았다. 어느 묘지에나 여러분과 같은 청년의 이름이 새겨진 묘비들이 있다. 여러 책들에도 유아와 노인을 제외하면 13~23세의 젊은층의 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이런 현실에 대한 관심을 내일로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솔로몬의 말을 기억하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일이 일어날른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

어떤 불신자는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에게 "심각하고 진지한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오"라고 대답했지만, 그에게 내일은 결코 오지 않았다. 내일은 '마귀의 날'이요, 오늘은 '하나님의 날'이다. 사람들이 중대한 결정을 내일로 미룬다면, 사탄은 그 사람의 의도가 얼마나 진지한지, 그의 결심이 얼마나 굳센지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마귀에게 이런 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이 다 이삭이나 야곱처럼 오랫동안 사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어린아이가 한둘이 아니다. 다윗은 두 아들을 일찍 떠나보내는 슬픔을 맛보았고, 욥은 하루에 열 자녀를 모두 잃었다. (욥1:2, 13~19 참고). 여러분의 운명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내일을 말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죽음이 찾아오면 즉시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이런 일을 생각하기에 좀 더 편한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의 설교를 들은 벨릭스와 아덴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두번 다시 오지 않았다(행24:10-27, 17:16~34 참고). 그런 생각은 사람을 지옥으로 이끌 뿐이다. 기회가 있을 때 진지하게 생각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영원과 관련된 문제는 조금도 남겨두지 말고 확실히 결정지어야 한다. 영혼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두고 모험을 일삼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영혼의 구원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젊은 사람이든 늙은 사람이든 모두에게 '큰 구원'(히2:3)이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거듭나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고 성령으로 거룩해져야 한다. 이런 문제를 확실히 결정지은 사람에게 복이 있다. 성령께서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언하실 때까지 잠시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이여, 여러분의 시간은 짧다. 인생은 한갓 그림자요,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 인생은 금방 과거의 이야기로 변한다. 우리의 육신은 청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사40:30).

육신의 건강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육체는 사고를 당하거나 염증이나 열병에 걸리거나 핏줄이 터지면 곧장 무덤에 들어가 벌레에게 먹히고 만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오늘 밤에 하나님이 여러분의 영혼을 취하실지도 모른다. 세상에서의 삶은 온통 불확실하지만, 죽음과 심판은 명백하고 확실하다.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들리면 곧장 '흰 보좌'(계20:11)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제롬의 말대로, "너 죽은 자여, 일어나 심판을 받으러 나오라"라는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재판관이신 주님은 "내가.. 속히 오리라"(계22:20)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내가 어찌 여러분을 염려하지 않겠는가?

전도자의 말을 명심하라.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며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에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심판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아무 준비도 없이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사실 사람들의 불신앙은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메시야ㅏ에 관한 성경의 예언 가운데 가장 확실한 예언은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사53:1)라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주 예수님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말씀하셨다.

청년들이여, 여러분에 대해 "그들이 믿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는 보고가 하늘의 법정에 올려질까 봐 두렵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 죽음과 심판이 확실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을까 봐 참으로 걱정스럽다. 내가 여러분에게 권면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3. 청년들의 장래가 그들의 현재 모습에 달려 있기 대문이다.
청년들의 장래가 그들의 현재 모습에 달려 있는데 정작 그들은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청년 시절은 장래를 위해 씨앗을 뿌리는 시기요 인생의 형성기이자 사고의 성숙기이다.
새싹을 보면 그것이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고, 꽃을 보면 그 열매를 알 수 있다. 봄철을 보면 농사가 잘될지 못될지를 예측할 수 있고, 아침을 보면 그날의 날씨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청년 시절의 성품을보면 그가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지를 짐작할 수 있다.

청년들이여, 스스로 속지 말라. 젊을 때 마음껏 쾌락과 정욕을 추구하며 살아도 나중에 하나님을 쉽게 잘 섬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에서처럼 살다가 야곱처럼 죽을 수 있을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생각은 하나님과 여러분의 영혼을 크게 모욕하는 것이다. 꽃과 같은 젊음의 힘은 마귀와 세상에게 바치고, 하나님께는 찌꺼기와 부스러기나 다름없는 쇠잔한 힘만을 드리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불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가 결국 큰 해를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잘못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회개를 뒤로 미루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여러분은 하나님 없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회개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기회를 주었는데도 오랫동안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선물을 보류하신다. 물론 참된 회개는 아무리 늦더라도 결코 늦지 않다. 그러나 너무 늦은 회개는 참된 회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아울러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의 강도가 마지막 순간에 회개한 것은 어느 누구도 절망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회개의 사례가 단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주제넘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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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쉽게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는 없다. 경건한 레이턴은 "죄의 길은 내리막길이다. 멈추고 싶다고 해서 쉽게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거룩한 열망과 진지한 확신은 우리의 뜻에 따라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는 백부장의 군사들과는 거리가 멀다(마8:9, 눅7:8 참고). 오히려 그것은 욥기에 나오는 들소처럼 우리의 목소리에 따르지 않고 우리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욥39: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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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랄수록 습관도 더 자라고, 우리의 힘이 강해질수록 습관도 더 강해진다. 습관은 죄의 보모이다. 새로운 죄를 지을 때마다 두려움과 자책감이 점점 줄어들고, 마음이 더욱 강퍅해지며, 양심이 더욱 무뎌지고, 악한 성향이 더욱 증대된다.

청년들이여, 내 말이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임종을 눈앞에 두고서도 돌처럼 아무 감정없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진 양심, 곧 화인을 맞은 강퍅한 양심을 지닌 채로 죽어 가는 노인의 모습을 직접 본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딤전4:2참고). 인간의 영혼은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습관은 선하든 악하든 날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더욱 자라난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거나, 아니면 멀어진다. 회개하지 않고 해를 넘기면, 우리와 하늘나라 사이를 가로막은 벽이 그만큼 더 높고 두꺼워지며, 건너야 할 심연이 그만큼 더 깊고 넓어진다.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죄의 습관을 두려워하라. 지금은 은혜의 때이다(고후6:2 참고). 인생의 추운 겨울이 닥치기까지 결정을 늦추지 말라. 젊을 때 주님을 구하지 않으면 습관의 힘 때문에 끝까지 그분을 구하지 못하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내가 이렇게 애써 권고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그렇게 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4. 마귀가 청년들의 영혼을 멸망으로 이끌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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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년들이 마귀의 간계에 무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마귀는 가장 치밀한 방법으로 청년들을 유혹한다. 마귀는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극도로 신중하게 유혹의 그물을 펼친다. 그는 자신의 덫에 가장 달콤한 미끼를 매달아 청년들을 옭아맨다. ... 부디 주님께서 마귀를 꾸짖어 청년들을 그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청년들이여, 마귀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 .. 마귀는 악한 것을 선하다고, 선한 것을 악하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마귀는 죄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죄에 금을 입혀 화려하게 치장한다. 마귀는 기독교를 싫어하게 만들기 위해 그 참된 본질을 왜곡하고 그릇 나타내 거짓으로 꾸민다.

.. 그는 경건의 능력은 없이 경건의 모양만 갖춘다면 얼마든지 기독교를 믿도록 허용한다(딤후3:5 참고). 마귀는 여러분에게 청년의 시절은 하나님을 믿기에 너무 이르다고, 말년은 하나님을 믿기에 너무 늦다고 속삭인다. 마귀의 농간에 절대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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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원수는 강력하다. 그 원수는 "세상의 임금"으로 불린다. 마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다. 그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만들었으며, 이로써 죄와 죽음을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알려진 다윗을 유혹해 그의 말년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조차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주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을 향한 마귀의 공세를 얕잡아 보곤 한다.

우리의 원수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는 결코 잠들지 않는다. 마귀는 항상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소홀히 여길지 몰라도 마귀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원수는 교활하다. 마귀는 오랜 세월 동안 오직 한권의 책만을 읽어 왓다. 그 책은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이 지니고 있는 약점과 거짓됨과 어리석음을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다. ..또한 설교를 듣고 있는 동안에도 마귀는 우리가 엉뚱한 생각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귀의 악한 의도를 얕잡아 보곤 한다.

도단에서 엘리사의 사환의 눈이 열린 것처럼, 여러분의 눈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왕하6:14~17 참고). 사탄이 여러분의 평안을 깨뜨리기 위해 무슨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에게 경고하고 또한 권면한다. 여러분이 내 말을 듣든 듣지 않든 나는 여러분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5. 하나님을 일찍부터 섬겨야 많은 슬픔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죄는 모든 슬픔의 원인이다. 특히 젊은 시절에 지은 죄는 그 어떤 죄보다 더 많은 불행과 고통을 안겨 준다.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의 어리석은 행동, 헛되게 낭비한 시간, 스스로 저지른 온갖 실수, 잘못된 사귐, 자신의 몸과 영혼에 가한 해악, 행복의 기회를 내동댕이치고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소홀히 흘려보낸 일 등을 생각하면, 양심의 가책과 자괴감과 수치심에 휩싸여 우울하고 씁쓸한 말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람들은 젊었을 때 지은 죄 때문에 일찍 건강을 잃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질병으로 인해 손과 발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또한 그들의 눈이 일찍 어두워지고, 기력도 크게 떨어진다. 아직 한창때인데도 건강을 모두 잃은 채 육신이 처참하게 시들어가는 것을 맥없이 지켜보며 슬픔을 삼킬 수 밖에 없다. 이는 감당하기에 너무나 슬픈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게으름이 슬픈 결과를 낳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가장 좋은 배움의 기회를 날려 보냈다. 그들은 사고력이 가장 원활하고 기억력이 가장 좋을 때,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인생의끝자락에 접어든 지금은 너무 늦었다. 앉아서 배울 시간이 더는 없다. 설령 시간이 있다고 해도 예전 같지가 않다. 한번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이것 역시 감당하기에 너무나 슬픈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잘못된 판단으로 심각한 잘못을 저지른 탓에 인생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조언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행동했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파괴하는 관계를 맺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전혀 적합하지 않은 직업을 선택했다. 그러고는 실수를 돌이킬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 또한 감당하기에 너무나 슬픈 결과 이다.

청년들이여, 젊을 때 많은 죄를 지어 짓눌리지 않는 양심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기 바란다. 젊은 시절의 죄는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을 죽이는 독화살이요 영혼을 찌르는 칼이다. 스스로에게 자비를 베풀라. 일찍부터 주님을 섬기라. 그러면 많은 슬픔의 눈물을 아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욥이 깨달은 진리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나를 대적하사 괴로운 일들을 기록하시며 내가 젊었을 때에 지은 죄를 내가 받게 하시오며"(욥13:26)
욥의 친구 소발도 사악한 자들에 관해 "그의 기골이 청년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욥20:11)라고 말한다. 또한 다윗도 똑같은 진리를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주님에게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시25:7)라고 간구한다.

스위스의 위대한 종교개혁자 베자는 이 지리를 너무나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유언장에 열여섯의 나이에 일찍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을 특별한 은혜라고 언급했다.

신자들에게 가서 물어보라. 많은 사람에게서 똑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내 인생의 시작을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텐데! 내 인생의 봄철에 악한 습관의 기초를 그토록 튼튼하게 쌓지 않았다면 참으로 좋았을텐데!"라고 한탄할 것이다.

청년들이여,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모든 슬픔에서 건져 주고 싶다. 지옥에 가면 그때는 이미 늦는다. 적당한 때에 지혜롭게 행동하라. 노년에는 젊었을 때 뿌린 것을 거두어야 한다. 말년에 아무 위로도 주지 못할 일로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하지 말라. 의의 씨앗을 뿌리라. 딱딱한 마음의 밭을 일구라. 가시떨기 사이에 씨앗을 뿌리지 말라.

...

"경험은 다니기 힘든 학교이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꼭 경험해 봐야만 비로소 깨닫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나는 청년들이 그런 학교에서 배우는 고통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젊을 때의 죄가 가져다줄 모든 불행을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내가 청년들을 권면하는 마지막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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