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are infralapsarianism and supralapsarianism?

17,284 2016.08.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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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끝나고 큰 아이 준영이가 마지막 이 부분을 이해를 못했다고 질문을 하는데, 사실 저도 이해 못했었거든요. 검색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혹시 저희 가족처럼 이해하기 어려우셨던 분들을 위해서 올립니다. 자료에 오류가 있으면 교역자님들이 교정 부탁드립니다. ^^

"What are infralapsarianism and supralapsarianism?"

The word “lapsarian” comes from the Latin word lapsus, which means the “doctrine of the Fall.” The prefix supra means above, while the prefix infra implies below. So the perspective of the former is “before the Fall” while the perspective of the latter is “after the Fall,” or in lieu of the Fall.

Infralapsarianism (“after the lapse”) puts God’s decrees in the following order:

(1) Creation
(2) Fall
(3) Election and Reprobation
(4) Atonement for the elect
(5) Salvation for the elect

Infralapsarianism focuses on God allowing the fall and providing salvation.

Supralapsarianism (“before the lapse”) puts God’s decrees in the following order:

(1) Election and Reprobation
(2) Creation
(3) Fall
(4) Atonement for the elect
(5) Salvation for the elect

Supralapsarianism focuses on God ordaining the fall, creating certain people for the sole purpose of being condemned, and then providing salvation for only those whom He had elected

Here is a statement of Supralapsarianism:

John Calvin writes: “...God has chosen to salvation those whom He pleased, and has rejected the others, without our knowing why, except that its reason is hidden in His eternal counsel.” (Concerning the Eternal Predestination of God, p.53)

Calvin explains: “When God prefers some to others, choosing some and passing others by, the difference does not depend on human dignity or indignity. It is therefore wrong to say that the reprobate are worthy of eternal destruction.” (Concerning the Eternal Predestination of God, pp.120-121)

In other words, Reprobation is just as unconditional as Election.

Calvin adds: “If what I teach is true, that those who perish are destined to death by the eternal good pleasure of God though the reason does not appear, then they are not found but made worthy of destruction.” (Concerning the Eternal Predestination of God, p.121)

Calvin writes: “…the reason why God elects some and rejects others is to be found in His purpose alone. … before men are born their lot is assigned to each of them by the secret will of God. … the salvation or the destruction of men depends on His free election.” (Calvin’s New Testament Commentaries: Romans and Thessalonians, p.203)


Both views teach the Biblical fundamentals:
(1) that predestination is double and includes both election and reprobation;
(2) that it is eternal and unconditional (i.e., that God chooses and rejects without regard to personal merit, but solely according to His good pleasure - Eph. 1, Rom. 9);
(3) that God eternally decreed the fall of man and the coming of sin into the world; and
(4) that God decreed all things for His own glory.

Both teach, then, that predestination is eternal and is in that sense before the actual historical event of the fall. Both also teach that in history redemption follows the fall and the coming of sin into the world. Christ's cross is the remedy for sin. The question only concerns the order of God's decrees, about which Scripture says nothing.

Infra­lapsarianism also emphasises the Biblical truth that election is gracious by seeing Christ even in God's decrees as the answer to and remedy for sin with its order: creation, fall, election, Christ (cf. Rev. 13:8). Note though that infra­lapsarianism does NOT say that election follows the fall in time (that would be Arminianism), but only in God's decree.

Nevertheless, the question is too speculative and abstract. Scripture says nothing about the logical order of God's decrees and it is, therefore, a matter of little importance and ought not be a matter of strife or division or a test of orthodoxy among Christians.

The fact is that God's decree is ONE, just as God Himself is One. It is, therefore, we believe, unnecessary to talk about order in the decrees and to try to separate and arrange them in some order.

We should emphasize that Christ is "before all things" as supra­lapsarianism does. This is very important. But we should also emphasize that election is gracious and reprobation just, as does infra-lapsarianism. That is equally important.

Emphasizing these two things we will not be, strictly speaking either supra- or infra-lapsarians, but will merely be keeping to those things that are revealed and leaving the secret things, the things God has not revealed, to God Himself.


인문학 소양이 부족한 탓인지 100%저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일단 두 이론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과, 구원의 결정 등에 대한 순서 차이만 알아도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훨씬 이해 하기 편한 것 같아요. infra-lapsaianism은 겉보기에 꼭 아르미니안 주의 같지만, 그것은 또 아니라고 하지요.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고 알고 읽으면 성경이 정말 꿀보다 달다는 것을 경험할 수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할 게 너무 많기는 하지만, 평균 수명도 늘은 데다가 인쇄술 발달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해서 훌륭한 텍스트에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정말 행복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은혜로 제 삶이 성령의 열매가 가득한 삶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댓글목록

최덕수목사님의 댓글

수련회 마치자마자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셨네요!^^ 제가 구글링을 해보니 차선미 성도님이 올리신 자료의 출처가 ‘http://www.examiningcalvinism.com/files/Articles/Supralapsarianism.html’ 이곳이더군요! 이 자료의 내용은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를 삼을만한 내용은 없는 것 같구요.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작정의 순서만 알아도 전택설과 후택설을 이해하는 일이 수월합니다. 수련회 때 안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은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의 논리적인 순서로 이해해야 한다. 두 가지 설은 하나님의 작정의 논리적인 순서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서 나온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선택과 유기를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짓기 이전에 결정하셨는가, 아니면 이후에 결정하셨는가’ 하는 것에 대해 타락 전 선택을 주장하는 자들은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짓기 ‘이전에’ 작정하셨다고 주장하고, 타락 후 선택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후에’ 작정하셨다고 주장합니다.

타락 전 선택설이 나오게 된 것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구원에 관한 결정에 인간이 개입한다고 보지요. 이에 대하여 타락 전 선택론자들은 ‘구원은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다’고 봅니다.

타락 전 선택설의 장점은 하나님을 모든 일에 항상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는 분임을 드러낸다는 것이고, 약점은 인간이 아무런 잘못을 범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이중예정을 통해 구원받을 사람과 거부할 사람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셈이 되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왜곡하는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입니다.

타락 후 선택설은 이런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주장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락 후 선택론자들은 하나님을 죄의 협력자로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계획을 세우시는 목적은 어떤 인간은 천국으로, 어떤 인간은 지옥으로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함으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으로 봅니다.

타락 전 선택설과 타락 후 선택설, 이 두 가설은 서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창조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만사를 하나님께서 주장하고 계신다고 봅니다. 따라서 어느 설을 따르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서로 다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작정의 시점과 순서를 살펴 본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네덜란드 유트레흐트 총회에서 1908년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 택설로 하여금 네덜란드 개혁교회의 교리를 대표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지만, 그 견해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마찬가지로 허용할 수 없다”.

늘 주를 아는 지식과 믿음에서 자라가시길 바랍니다!^^

남은우님의 댓글

ㅎㅎ 이미 목사님께서 답을 하셨지만 저도 고민하면서 적은 바가 있어 이렇게 나눠봅니다.^^

수련회 때 강사 목사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타락전선택설(supra-)이나 타락후선택설(inpra-)이나 둘 다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한 것입니다. '타락후'선택설이라고 해서 인류의 역사적 타락의 사건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의 작정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다 창조 이전에, 하나님의 영원하고 단일한 작정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작정의 순서라는 것은 시간 속에서의 사건의 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의 논리적 순서를 의미합니다.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예정에 관해 소극적으로 말하거나 꺼린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미니안주의에서는 인간의 선택 의지가 하나님의 주권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기능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예정보다 예지를 앞에 둡니다. 인간의 믿음의 선택이나 믿음의 순종이 하나님의 선택의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먼저 믿을 자들을 예지하고 그들을 택자로 예정합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단일한 작정을 말하기가 불편합니다. 따라서 도르트신조 오류논박에서도 보면 알미니안주의는 선택의 작정을 단일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첫째교리 오류논박 2.). 강사 목사님께서 수차례 언급하신 것처럼 알미니안주의는 하나의 확고한 구원의 선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주장합니다.
여튼 타락전선택설이나 타락후선택설에 관해서는 둘 다 정통신앙 안에 공존해 왔던 입장이며, 일반적으로 타락전선택설보다는 타락후선택설이 보다 보편적이었다고 여겨집니다.
(혹자는 도르트신조가 타락후선택설의 입장을 드러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첫째교리 10항, "하나님께서 공통된 죄인의 무리 가운데 특정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는 것...")
따라서 위의 글처럼, 타락전선택설이나 타락후선택설에 관하여 둘 다 포용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로버트 레이몬드처럼 타락후선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요)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성경이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사색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무익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입장이 성경을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저는 그것도 경청할 만한 입장 중 하나라고 여깁니다. 실제로 이 교리는 정통과 이단을 나눌정도로 핵심적인 교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쉽게 간과해 넘기기 어려운 여러 소중한 고민거리들이 얽혀 있기도 합니다. 가령 위의 글의 저자는 타락전선택설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에 앞서신다는 강조점이 있고, 타락후선택설에서는 선택의 은혜로움과 유기의 공의로움에 대한 강조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지적에 저는 다소 의문점이 들기는 하지만, 적어도 위의 글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 이 논의를 고민하여 얻은 유익이었던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한편 저의 경우에는 이 문제가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궁극적인 목적과 영광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데 유익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작정에서 '선택과 유기'를 첫 자리에 놓을 때, 그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영광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심(선택)과 공의로우심(유기), 즉 '하나님의 속성'을 드러내는데 있게 됩니다. 반면 '선한 창조'를 작정의 첫 자리에 놓게 될 때, 그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영광은 창조-타락-새창조를 통해서 드러나는 바 '하나님 나라'의 극치에 있게 됩니다. 물론 이 둘은 강조점의 차이일 뿐 서로가 대립되거나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성경은 둘 다를 함께 강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실 때도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통치가 우주적으로 드러나는 면)와 '그분의 의'(하나님의 통치의 내적 속성)를 함께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외에도 주어진 논의들을 우리가 건설적으로 살핀다면 우리는 메마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묵상의 소재가 늘어나게 되고, 또 그 고민의 결과와 유익으로상 성경이 가르치는 더 깊은 내용들을 더 확고하게 되새기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차선미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두 분의 훌륭한 설명을 들으니 더 많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논의가 우리를 메마르게 하는 게 아니라 성경적 묵상의 소재가 늘어나게 된다는 말씀에 동의가 많이 됩니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정말 그렇다고 느꼈어요.

황보라님의 댓글

목사님~ 답변글 세번째 문단에서
타락 전 선택설이 나오게 된 것은...과
타락 전 선택론자들은...부분이 둘 다 타락" 전" 인지요
제가 잘 모르는 내용이라서 읽는데 의문이들어서요~

최덕수목사님의 댓글

네! 둘 다 타락 '전' 맞습니다! 혹시 어느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되시는지 말씀해 주시면 답변을 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