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들어오다(한국 입양홍보회 입양가정 수기 공모전 출품작)

10,385 2016.08.2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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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입양가정 수기 공모작입니다.
입양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관심이 늘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교회 공동체와 같이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어 올려 봅니다.

별이 들어오다

2010년 2월 25일 아침 (생후 19일)
아직도 봄방학은 끝나지 않았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별로 목마를 것도 없고 그저 가족들과 생활하는 것 외에 그다지 결핍될 것이 없는 교사의 한가로운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도 그냥 이렇게 아무 간섭도 안 받고 늘어져서도 충분히 하루가 가리라는 생각에 매우 만족스럽다.
그런데 갑자기 이 한가로움을 깨뜨리는 약속 한 가지가 머리를 스친다.
동방사회복지회 양부모교육! 여길 가야 한다.

우리 집은 고등학교 교사인 나, 어린이집 교사인 아내, 고등학교 갓 입학한 아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에서건 우리 가족은 화목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도 다를 게 없다. 아들이 중학생일 때 세 가족은 탁구로 뭉쳐서 운동을 하고 맛있는 외식을 즐기고 가족 간에 대화도 잘 통했다. 사춘기가 뭔지도 모를 만큼 아들은 잘 커주었고 우리 가정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식당에 가면 아들 옆 한 자리가 허전하다. 또한 가족 간 성비가 맞지 않는다. 시간이 지난 뒤 엄마의 친구가 되어줄 딸이 있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도 자식과의 스킨십이 그리운데 아들과의 스킨십은 끊긴 지 오래다.
‘그래 딸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교회에 새 식구가 왔다. 부부 그리고 2남 1녀의 가정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는데 신앙적으로도 매우 모범이 될 만한 배울 점이 많은 가정이었다. 이 가정의 막내딸!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예의 바르고 순종적인 꼬마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6개월 된 아이를 입양했다고 한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해답을 찾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가정예배 때 입양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래 예쁜 딸을 입양하고 싶다.’ 철이 없었고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기도였지만 예쁜 딸, 똑똑한 딸을 입양하고 싶다고 기도하고 있었다. 신앙적으로 굳건한 가정은 아니었기에 이런 이기적인 기도를 숱하게 많이 해왔었고, 그런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입양을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이런 이기적인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예쁘고 똑똑한 우리 딸 주원이를 만나게 해주셨다.

보통 같았으면 늦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의 최선의 결정은 오후의 약속들은 모두 접는 것이다. 그러나 오후 2시 동방사회복지회 방문은 그럴 성격이 아니었다. 초스피드로 준비하여 외출을 준비하는 내 모습에 나도 놀라고 있었다.
동방사회복지회 양부모교육을 받고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 아이들을 만났다. 라운딩이라고 했다. 투명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에 아이들이 누어있었다. 머리가 까맣고 이목구비가 또렷한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참 예쁘다.’ 아내의 생각도 같았는지 서로 눈이 마주쳤다.
1층으로 내려와 입양상담을 시작했다. 박OO 간사님! 연세가 있으시고 인자하신 분이었다.
‘딸을 원하신다고요?’
‘예.’
‘입양시기는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정말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호호’
‘예? 10개월 정도 걸린다던데요?’
‘원래 입양 가려던 가정이 있었는데 딸을 입양하려 진행하였다가 아들로 바꾸는 바 람에... 일단 아이를 한번 만나보시죠.’

아이와 처음 만났다. 라운딩할 때 우리 부부의 눈에 들어왔던 머리가 까맣고 예쁜 그 아이였다. 나는 그렇게 살갑지는 않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를 본 순간 이런 느끼한 말을 외치고 있었다.
‘아빠다~. 아빠 왔다~.’
이상하게 뭔가 당기고 있었다. 핏줄일까? 그건 아닌데...
이름을 미리 생각하여 이지원, 이주원 중에 고민하고 있던 우리는 아이를 보고 동시에 주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다.
주원이, 主(주인 주) 願(원할 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생후 19일이 된 그날이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일이 이것이라니. 믿음도 없고 철없이 세상 복락?에만 빠져 지내던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계셨다.
첫째 아들을 낳고 피임 중이던 우리 부부는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해 산부인과에서 루프를 제거하는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1년 뒤 병원을 방문한 결과, 의사가 실수로 차트에만 표시하고 실제 루프는 제거하지 않았던 것.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우리의 인생을 바꿔놓은 그 의사에 대해 불쾌한 감정이 솟구치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하니 그 오묘함에 대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 때 둘째를 낳았다면 아마 지금의 주원이를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 3월 3일 (생후 25일) 주원이가 우리의 가족이 되었다. 입양특례법이 생긴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입양교육을 받고 상담을 받은 뒤 일주일만이었다. 아이를 보고 서류를 꾸미고 하는 6일이 매우 힘들었다. 내 딸이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동교동 로터리를 향해 차를 돌리려고 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포대기에 싸여 나온 아이를 안아들고, 보고 싶었던 마음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며칠 사이에도 많이 커있는 것 같았다. 자유로를 달려 도착한 주원이의 집, 보금자리, 운정 월드메르디앙. 교회 식구들이 와서 나와 아내의 출산을 축하해 주었다. 참 행복했다.
그날 밤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고 그에게는 설마설마하던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포대기에 싸여 똘망똘망한 눈을 하고 있는 태열기도 가시지 않은 갓난아기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15살 차이나는 동생이 생긴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둘은 죽고못사는 사이가 되었고 자동차 뒷자리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핏줄이며 나이 차이가 뭐가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냥 여느 오누이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행복이었다.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아들, 주원이의 15살 차이나는 오빠,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도 짠했지만 6살밖에 안 된 주원이가 오빠와 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 참 마음 아팠다. 다른 6살짜리 친구들은 이런 경험에 노출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병교육 수료식 후 또다시 헤어짐의 순간이 왔을 때, 부모의 뜨거운 눈물도 그러했지만 15살 차이나는 오누이의 이별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서로 안아주며 눈물을 흘리는 오빠와 여동생을 보니 그 어느 신파극보다도 슬펐다. 주원이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마음 상태에 분리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이런 오빠와의 이별도 그 원초성이 작용하고 있을지에 대해 우리는 현미경으로 보듯이 자세히 볼 수 없기 때문에 부모로서 예사롭지 않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으로 아이를 낳는 체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원이를 맞으며 느꼈던 기쁨은 왠지 일방적이었다. 예쁜 딸아이가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적 같은 만남으로 가족이 되었다는 커다란 생각 속에는 작지 않은 슬픔의 현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아이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가. 왜 낳아준 부모와 살지 못하고 평생을 마음 속에 입양아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야 하지. 왜 나만. 난 예쁘고, 꽤 잘하는 게 많고, 자랑할 것도 많은데 왜 입양이라는 현실만 떠올리면 남들 앞에서 작아지는 걸까.’
이런 식의 생각을 하며 살아갈 주원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차 운전이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아내의 경우도 아이를 돌보며 얼마나 울었을까 안 봐도 비디오였다. 우리 깜냥에 하기 어려운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이런 감정의 흐름들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데 잘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겁이 나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는 순전히 이기적 입장에서 입양을 진행한 것이었기에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위탁부모 역할을 하고 그 가운데 아이들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는 많은 시간을 보낸 양부모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너무 순식간에 그것도 아주 쉬운 과정을 거쳐 입양을 하게 된 우리는 정말 열 달이라는 진통의 과정 없이, 일찍 아이를 낳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준비되지 않은 부모였기 때문이다.

2010년 5월 어느 토요일, 장모님과 처형들이 오셨다. 주원이의 백일잔치를 위해 모인 것!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딸아이에 대한 걱정과 넉넉지 않은 교사의 가정경제를 걱정하며 입양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었다. 40대 중반이 된 우리가 부모의 허락을 받고 아이를 낳을 필요는 없기에 통보하듯이 거사를 행했지만 대뜸 돌아오는 것은 석연치 않은 반응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부모님을 모시고 있던 큰형수님에 비하면 그래도 괜찮은 반응이었다. 큰형수님은 5남매 중 막내인 나에게 그나마 안정된 생활을 하니 부모님 부양의 무게를 나눴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 부모님이나 모시지 입양이 웬말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이 상처가 되어 껄끄러운 관계를 한 동안 유지했지만 사실 입양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당연한 말이었다고 생각하니 감내 못할 정도의 섭섭함은 아니었다. 입양도 자식을 낳는 일인데 굳이 부모나 모시지 자식을 낳느냐는 표현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마치 내가 그런 말을 들은 것이 아니라 주원이가 박대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분을 참기 어려웠었다.
입양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편견이다. 가난한 살림에 자식만 낳아댔던 흥부는 사회적으로 지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자식을 낳는 것도 인간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원이와의 만남이 운명적인 것처럼 말이다. 일단 입양을 결심한 부모들은 경제적인 손익을 따지지 않으리라 믿는다. 아니 적어도 그것이 1순위는 아닐 것이다. 경제적 손익을 따지는 순간에 입양은 살아가기 빠듯한 이 세상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낭만적인 모험이 되기 때문이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고 이자를 갚아나가며 살아야 하는 우리 경제 사정을 곱씹어 고민했다면 우리에게 입양은 그저 지웠다가 그렸다 하는 그림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버님은 전주 이씨, 세종대왕 14대손 운운하시던 유교적 전통을 매우 중시하시던 분이었다. 입양을 한 뒤, 갓난아이를 아기바구니에 담아 찾아뵈었을 때 그다지 달가워하는 표정은 아니었지만 장성한 아들의 선택이라 노발대발하지는 않으셨다. 난 당당하게 당신의 손녀 딸 주원이의 主자, 願자 이름을 종이에 적어 드렸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가족이 생기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생기고, 하여간 주원이에게도 가족이라는 커다란 네트워크가 생기고 있는 순간이었다. 주원이가 예쁜 공주로 자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다면 핏줄을 중시하는 아버지께서 족보에 볼펜으로라도 이름을 적어 넣으셨을까, 손녀로 받아들이고 예뻐해 주셨을까 복잡한 생각이 든다.
백일은 처갓집 식구들과 보낸다. 하도 처가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그렇기도 하지만 주원이에 대한 전폭적인 사랑이 처갓집에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달갑지 않아하셨던 장모님, 장인어른은 한 동안 못 보면 주원이가 어른거린다고 할 정도로 어린 손녀딸에 대한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원이를 입양하지 않았다면 어쨌겠냐며 잘했다고 칭찬해 주신다. 처음에는 약간 섭섭한 말씀을 하셨었다. 주원이가 좋은 부모를 만나 복받았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거꾸로 우리 부모가 주원이를 통해서 받게 된 행복과 장차 받을 복에 대해 말씀하신다. 시간은 걸리지만 이렇게 입양에 대한 인식은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또 하나의 오해, 입양한 자식을 친자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이 문제에 자신이 없어서 입양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포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벽을 넘어서면 그 문제는 고민거리도 아니다. 입양이라는 세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모두 해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냥 가족인 것이다. 요즘 웬만한 집은 반려동물을 키운다. 인간과는 종이 다른 동물들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을 본다면 사실 이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 집만 해도 애정을 쏟는 정도로 따진다면, 워낙 나이 차이가 나는 막내이기도 하지만 입양한 딸이 더 애틋한 무엇인가가 있어 오히려 마음이 간다.
주원이에게 우리는 주원이가 4살인 무렵부터 낳아준 부모님이 따로 계시고 키울 수 없는 이유가 있어 입양이 되어 아빠 엄마와 가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움찔하며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 몇 차례의 이야기를 나눌 때는 눈에 눈물이 고이곤 하였다. 가뜩이나 영특한 녀석이 속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그 이후 자기를 혼낼 때는 자기가 입양되었기 때문에 혼낸다고 생각했었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부모가 자녀를 훈육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여 주어 다시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후 오히려 자기를 훈육하여 주는 부모로 인해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들어 나눈 입양에 관한 얘기에서 주원이는 자신이 입양되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가 되었다. 엄마, 아빠가 생겨서 좋다는 것이다. 물론 대화 중에 낳아준 부모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하고, 우리가 가짜 엄마, 가짜 아빠로 칭해질 때도 있었지만 전혀 섭섭하지 않다. 주원이의 진짜 부모는 우리라는 것을 주원이도 알고 세상도 다 알기 때문이다.
백일이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아들을 키우고 15년 만에 다시 시작한 육아에 아내의 손목과 허리는 출장간 지 오래고 나 또한 한 동안은 아이 재우랴 목욕시키랴 밤에 일어나 우유 먹이랴 육아의 현실과 그로 인한 쓴맛, 짠맛을 제대로 맛보고 있었다.

2015년 12월 24일
꽤 오래 다니던 교회를 떠나 작년 3월 지금의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오늘은 교회 식구들이 여러 가지를 준비하여 발표하는 날이다. OO 가족의 밤! 6살 주원이가 교회 식구들의 성대한 잔치의 오프닝 인사를 2년 째 맡고 있다.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에 남 앞에 서기를 좋아하고 또래 아이들과 놀 때에 언제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는 아이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한 성격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어두운 성격에 소극적이지 않아서 오히려 안심이 된다. 앞으로 살아가야할 험난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기에 좀더 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미모는 하루가 다르게 수려해지고, 키도 우리 집 식구들 중에는 찾아보기 어려운 월등한 유전자를 뽐낼 기미가 보인다. 다른 교회를 다니다가 새로 등록서약을 하기 위해 성도들 앞에선 우리 가족들, 부부, 대학생 아들, 그리고 여섯 살짜리 딸내미! 도대체 우리 가족 구성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나와 아들은 판박이로 닮았기에 많은 오해들이 있었나 보다. 남편과 아내, 딸, 시동생인지 아니면 남편과 아들 원가정, 아내와 딸 원가정이 재혼하여 결합한 것인지 등 오해가 많았단다. 등록하기 전 목사님께서 가정을 방문하였을 때, 우리는 주원이의 입양 사실을 고백했다. 어차피 한 교회 공동체로 살아가야 하기에 자연스럽게 공개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공개 입양을 애초에 생각하였기에 망설임은 없었으나 당사자에게 입양 사실을 알리고 가까운 가족 간에만 사실을 공유하는 것과 교회, 학교 등에서 입양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였다. 목사님은 일단 입양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해 주셨다. 혹시라도 겪게 될지도 모를 주원이와 우리 가족의 어려움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그 자리에서는 수긍하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찜찜하여 목사님께 메일을 보냈다.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거짓을 말하기 어렵고 교회는 평생을 함께 지내야 할지도 모르는 사회 공동체와는 구별된 곳이라는 생각에 사실을 점진적으로 공개해 나가겠다는 의사를 목사님께 전달했다. 이제 교회에는 주원이의 입양 사실이 공공연한 일이 되었다. 사실을 알고난 뒤 대부분의 첫 반응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것인데 정말 칭찬받아 마땅한 입양 가정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가정들이 그렇고 우리 가정도 그렇듯 자식을 낳는 다른 방법일 뿐이지 칭찬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러한 첫 반응들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입양을 한 가정으로서 입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입양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권장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커진다. 주원이는 우리 가정에서도 가장 믿음이 좋은 것 같다. 신앙 안에서 잘 자라는 주원이 모습에 안도가 된다. 신앙이 영혼의 문제와 관련된 최우선의 일이기도 하지만 주원이가 세상을 살아갈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원이가 당당한 입양인으로 성장하였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자신이 입양인임을 당당히 고백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에서 입양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며,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사랑의 공동체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원이가 앞으로 넘어야 될 벽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안다. 수많은 편견의 벽들을 당당히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빠, 엄마가 먼저 당당한 디딤돌 역할을 해주어야 함도 잘 알고 있다.
입양은 내가 50년을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고, 내 인생을 더블 팩키지로 만들어 주었으며,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기적적인 사건이다. 기적적인 사건의 중심에 예쁘고 똑똑한 딸 주원이가 있다. 15년 만에 놀이공원에 다시 가고, 난생 처음 계곡 물놀이까지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퇴근하길 목을 빼고 기다려 주는 딸, 오랜 만에 보면 볼을 비비며 애교를 떨어주는 딸, 아빠가 필요한 것을 먼저 알고 챙겨 기다려주는 딸내미. 내가 장수해야 하는 이유다. 주원이가 중년의 성숙한 여인이 되어 남편, 세상 모두 호령하는 모습 볼 때까지 함께 살고 싶다.
예쁘고 똑똑한 딸, 마음까지 고운 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별이 들어오다>

별이 들어왔다. 그것도 작고 예쁜 별

어느 날
별이 우리집에 들어오더니
뒤뚱뒤뚱
까르르
한 식구가 되었다.

듣기로는 슬픈 별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왔다고 하던데

전혀 슬퍼하지 않는 별이 오늘도
우리 곁에서 새르르 자고 있고
조금 있으면 한바탕 울거나 까꿍 웃으며
우리에게 전혀 슬프지 않은
아침을 선물할 것이다
사실은 이 난데없는 별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생김새도 다르고 취향도 다를지 모를, 별과 우리들
드넓은 우주의 주인이 맺어준 인연 때문에 그저
한바탕 웃고
한바탕 울고
한바탕 전율하며
살아갈 뿐인 것을

우리가 어느 날 난데없이 들어온 이 별 때문에
날마다 예뻐지고 날마다 행복해지다가
새로운 혈맥이 터져 나올 것이다.

뒤뚱뒤뚱 아이는 걷고 있고
까르르 웃고 있고
별이 되고 우리의 딸이 되고
별이 되고 가족이 되고
<학교 문예반 문집에 실었던 시>
댓글목록

임종훈님의 댓글

먹먹하고 뭉클합니다.

차선미님의 댓글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런 아름다운 별을 선물로 받으셔서 정말 행복하시겠어요. 예전에 입양센터에서 일했던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입양은 내가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필요해서 이기적인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요. 이기적이라는 표현에 의아해 했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더 무엇을 더 준다기 보다는 아이가 부모에게 더 주는 게 많다는 의미였더라구요. 성도님의 글을 읽으니 그 의미가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그리고 주원이도 좋은 부모를 만나서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해 보인답니다.

이현규님의 댓글

팟캐스트, 입양 톡 사랑 톡 톡톡 추천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팟빵에라는 앱을 까시고 입양이라고 검색하시면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인순님의 댓글

강숙희 성도님께서 현산교회 등록후 저와 같은 구역원이 되셔서 입양에 대해 말씀 하셨을 때 신기하기도 했고 존경스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입양 가정을 처음 대해봤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편견에 사로 잡혔던 사람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답니다. 이현규 성도님께서 걱정 하셨던 편견들을 모두 가진 사람이었으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자이면서도 지체들이 다 한 가족이라고 말하면서도 믿지 않는 자들처럼 생각하며 사는 제 모습이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가정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가족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고 제 안에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입양에 대한 편견들을 마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그냥 생명 자체로 바라보는 것, 그것 외에 다른 여러 생각이나 판단은 불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전미숙님의 댓글

제 가장 친한 친구도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어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저는 오히려 제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더라구요.
얼마나 귀하게, 얼마나 애쓰며,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지,..ㅠㅠ
직접 낳았든, 낳지 않았든,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각 가정의 아이들이 정말 아름답게 자라나는 모습을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수련회를 다녀오고 우리 현산의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 심성을 가졌는지 새삼 느꼈었는데, 지금의 그 예쁜 마음과 모습들이 사춘기를 지나고, 성인이 되면서 흐릿해지지 않고 더욱 견고한 믿음의 사람으로 커나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