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에 감염된 행복한 우리 집

11,253 2017.10.1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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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입양홍보회 입양수기공모전 두 번째 도전에 장려상 받았습니다.
상 받아서 자랑하기 위해 올리는 것 아닙니다.
작년에 비슷한 글 한번 올려서 이번에는 자제할까 생각했는데 제가 속한 사회와 교회가 입양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 가정이 살 길이라는 강한 울림을 막을 수 없어 용기를 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준비하는 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우리 집 막내딸 주원이가 눈을 떴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빠를 따라 나오는 딸. 나는 마음에도 없이 ‘나오지 마.’를 연발하지만 나는 은근히 딸의 출근길 배웅을 즐기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자칫 주원이가 늦잠을 자서 배웅을 못 받는 날은 허전하기 짝이 없다. 매일 같이 맨발로 뛰어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진한 뽀뽀를 하고 손을 입에 대어 키스를 날려주고 ‘안녕히 다녀오세요.’, ‘아빠, 사랑해요. 알라뷰.’를 외쳐 준다. 다른 집에 폐를 끼칠까봐 조용히 하라고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 진한 배웅은 엘리베이터에 달린 작은 유리에 대고 손을 끝까지 흔들어주는 애틋한 이별로 마무리 되는 듯하다가 출입문을 나서 주차장을 향해 가는 아빠를 향해 11층 유리창을 통해 그 이른 아침에 ‘아빠, 사랑해.’를 외쳐 대는 것으로 결국 마무리가 된다. 이웃집에는 확실히 민폐이고 참 아침마다 요란하고 이상한 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잘하면 단잠을 깨웠다고 관리사무소로 연락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좋다.
 이 딸내미가 바로 생후 25일째 되던 날 입양을 통해 가족이 된 귀하고 귀한 막내딸 주원이다. 그렇게 아들의 고등학교 입학 날이 우리가 입양이라는 학교에 입학한 첫 날이 되었다. 15년 만에 타임머신을 타고 신생아 육아의 세계로 돌아간 바로 그날이기도 하다. 바라고 바라던 딸아이를 키우게 되었다는 기쁨과 눈이 똘망똘망한 아이가 우리 집 침대에 누워있는 그 자체로 얼마나 큰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입양기관에서 주원이와 처음 만난 날 마치 정해져 있던 인연을 만나는 것처럼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던 ‘아빠다. 안녕! 아빠다.’라는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날 이후는 만만치 않은 현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밤잠을 설쳐가며 아이 보는 일에 두 눈이 퀭해지며 지쳐 가고 있었다. 몸이 약한 아내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선생인 나는 개학하자마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15년 전으로 모든 것이 돌아갔지만 40대 중반의 저질 체력들은 타임머신을 올라타지 못했던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아내와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육아라는 힘겨움과 아이의 입장이 되어 아픔을 받아들이는 가슴으로 낳기의 과정을 겪어내고 있었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넘어야 할 숱한 감정의 산들과 사회적 편견의 벽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주원이가 오기 전 세 식구는 아주 잘 살고 있었다. 나름 가정적인 편인 나와 알뜰살뜰한 예쁜 아내, 사춘기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착하게 커준 아빠 판박이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식당에 가면 비어 있는 한 자리가 자꾸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교회 출석하던 입양 가정을 통해 점점 입양에 물들기 시작했다. 잘 키운 딸이 있는 그 가정을 통해 우리 가정은 감염이 되었고 ‘채워라. 채워라.’라는 그 울림에 응답해서 결국 채우게 되었다. 물론 식탁의 어엿한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많은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 여덟 살 초딩이 되어 어엿한 한 자리, 한 메뉴를 시키기 시작하기까지 그 과정 속의 즐거움 또한 정말 귀하고 귀한 것들이었다.
 딸내미는 외모로 따지자면 정말 최상급이다. 약간 통통하여 걱정이지만 키로 쭉쭉 클 것이 분명하고, 짙고 가지런한 눈썹에 커다란 눈, 알맞은 높이의 코 거기에 백만 불짜리 입술은 실로 감탄할 수밖에 없다. 부끄럽기도 웃기기도 한 얘기지만 우리 가정이 입양을 위해 기도할 때 ‘예쁘고 똑똑한 아이’를 만나기를 기도했었다. 실로 철없는 기도였지만 하나님께서는 확실히 입양을 좋아하시는지 이런 기도에 즉각 응답해 주셨고 우리 집의 유전자로는 몇 대를 거쳐도 나오기 힘든 고급스러운 외모의 딸내미를 보내 주셨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성격과 친구들을 매료시키는 부드럽고 화려한 리더십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까지 그녀의 매력 공개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악기에도 재능이 있어 피아노를 배운지 7-8개월밖에 안 된 시기에 콩쿠르에 나가 또래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하고 틈틈이 배운 발레는 그 어린 나이에 예술혼이 몸속에 들어갔는지 감흥이 오는 음악만 나오면 자연스러운 춤사위를 선보여서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준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만들기를 할 때마다 드러나는 그녀의 창의성과 그림 속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들, 디테일한 묘사는 보는 사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한다. 과연 이 아이가 무엇이 될까? 누구나 자식 자랑을 할 때, 혹시 내가 지나친가라는 의문을 갖긴 하겠지만 자꾸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팔불출이를 막을 수가 없다.
 공개 입양을 선택한 가정들이 겪는 공통된 어려움이 있다. 과연 언제 아이에게 말해 줄 것인가. 그 부담을 과연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가정은 네 살 때쯤부터 낳아준 엄마, 아빠가 따로 있다는 얘기를 했다. 주원이의 당황스러워하며 촉촉해지던 눈가를 잊지 못한다. 그 뒤 입양 얘기만 나오면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도 순간순간 마음은 아팠지만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며 틈이 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입양을 얘기하기 위해 애썼다. 주원이가 나이가 들면서 속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지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주원이의 속생각에 들어 있던 단어인 ‘가짜 엄마, 가짜 아빠’라는 소리도 듣게 되었지만 우리는 ‘진짜 엄마, 진짜 아빠’라는 확신이 있기에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 그녀와 우리가 공유하는 경험과 추억들이 이제 백만 트럭 분량은 되기 때문이다. 놀이동산에 가서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 함께 동네 넓은 곳에 나가 연을 날렸던 기억, 여름에 계곡에 가서 물놀이를 했던 기억, 자전거 보조 바퀴를 떼 주고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하던 순간, 방학만 되면 아빠와 손을 잡고 걸어가 영화관 데이트를 즐겼던 기억들, 거실에 텐트 치고 잠들어 함께 아침을 맞았던 기억들 아니 그 무엇보다도 같은 반찬에 밥 먹으며 살아온 시간이 이제 꽤 오래 되었다. 모두가 우리 인생에 덤으로 얹어진 행복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묻는 대표적 질문인 ‘아빠 좋아? 엄마 좋아?’라는 질문에 주원이는 이렇게 현명하게 대답한다. ‘낮에는 아빠, 밤에는 엄마’ 낮에는 놀아주고 장난쳐주는 아빠가 좋을 수밖에 없다. 낮에는 주로 엄마들은 규율대장이니까. 반면에 밤에는 엄마가 옆에서 기도해 주고 꿈나라까지 같이 가주고 하루의 이야기를 요모조모 나누며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볼이 부르트도록 뽀뽀를 해주니까 당연히 엄마가 좋은 것이다. 어려서 많은 아이에게 나타나는 분리불안도 주원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아빠인 내가 주원이를 혼자 놔두는 경험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안달을 할 뿐이다. 입양 홍보회에 소속되어 입양 캠프 등의 행사를 통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고 같은 처지에 있는 가정들과 만나게 된 경험들이 우리 가정을 입양 가정으로 당당하게 서게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이제는 우리 가정을 중심으로 해서 지역모임을 만들고 벌써 십 여 가정이 매달 모이고 있다.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모임을 통해 아이들은 점점 더 입양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주원이도 입양이라는 단어를 이제 쉽게 꺼내게 되었고 입양과 관련한 대화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이게 마지막 터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제2의, 제3의 터널이 등장한다고 해도 이제 별 두려움이 없다. 솔직히 이제는 입양인인 내 딸보다 그냥 내 딸의 앞날에 관심이 많다. 힘든 육아의 상황에서는 사실 옛날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해서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뒤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아이가 제 앞가림을 시작해서 어린아이 육아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시점인 다섯 살 정도까지밖에는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기대도 안 했던 덤과 같은 인생이 펼쳐지지 않는가. 주원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의 뿌듯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초등학생이 되니 아빠의 나이가 오십을 훌쩍 넘어버렸지만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있는 여고생들을 볼 때마다 우리 딸이 저렇게 컸을 때 얼마나 예쁠까를 생각한다. 교복 입은 모습이 특히 기대되고 일찍부터 화장을 하려 하면 어쩌지? 남자친구 일찍 사귀면 어쩌지?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는 자체가 정말 즐겁다. 그야 말로 덤과 같은 인생이다. 주원이가 없었다면 우리 가정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주원이가 아빠 엄마를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며 호강시켜주겠다는 말을 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호강시켜주겠냐는 질문에 주원이는 열 손가락을 펴서 열 번 정도를 흔들어주었다. 그때 내가 방정맞게 던진 말 때문에 주원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땐 아빠, 엄마는 천국 갔어.”
 아침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에 난 조금만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드는 주원이의 모습에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오버랩 되어 가슴이 쓰릴 때가 많아서 위험하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주원이와 오랫동안 함께 살고 싶다. 하지만 숙명적인 이별을 피할 수 없는 법.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현재의 사랑이 지겨워질 때까지 누리고 나누는 것이다. 이것은 입양의 문제도 아니고 전혀 슬픈 일도 아니다. 주원이를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나게 하고 주원이가 또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또 자녀에게 그 모습을 전하고 또 멋지게 이별하고 또 천국에서 만나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주원이가 당당한 입양인으로 성장하였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자신이 입양인임을 당당히 고백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동체에서 입양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며,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사랑의 공동체 속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인생은 주원이 입양 전과 후로 나뉜다. 인생을 살면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었고 느낄 수 없던 것을 느끼게 되었다. 직장에서도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나 표정 등이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내가 느끼고 있는 행복감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행복감을 사실 주체할 수 없다. 입양은 돈이 많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사명감이 충만한 인성이 좋은 사람들만이 하는 것도 아니다. 착한 일도 아니다. 그냥 이 세상에서 자연스럽게 의식하지 않은 상태로 이루어지는 일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입양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돈 좀 없어도 그냥 밥숟가락 놓고 살면 되고 착하고 바르게 교육시키겠다는 생각만 갖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키우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갈망만 있으면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인생에서 했던 행동과 선택 중에 베스트는 주원이를 입양한 것이다. 내 깜냥에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된 것도 행운이고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은 그 누군가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이런 베스트를 사람들이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 가정에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행복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주원이가 아가씨가 되어 우리 가족의 해외여행 스케줄을 잡고 노부모의 팔짱을 끼고 함께 여행을 하는 상상, 생각만 해도 즐겁다. 엄격한 전형절차를 거친 후겠지만, 다른 녀석에게 딸을 보내야 하는 결혼에 대한 상상은 잠시 멈추고 싶다.
 한 마디로 입양은 WIN WIN이다. 우리 가정이 그랬듯이 입양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특례법 할아버지가 와도 소중한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의지를 막을 수 있겠는가. 입양은 그냥 하는 것이다. 우리 같이 평범한 가정이 아이를 만나 가족을 이루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오늘도 퇴근하면 딸내미가 목을 빼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고 하루 안부를 물을 것이다. 조금 있으면 생선 가시를 발려주며 밥을 빨리 먹으라 재촉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꼭 그래야 되는 일상이 되었지만 이것이 결핍되어 있는 아이들과 가정들에게 꼭 좋은 소식 있길 바란다. 입양은 감염될수록 좋은 행복이니 어서들 옮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 더 많은 주원이가 활짝 웃도록.
댓글목록

태영백님의 댓글

늘 행복해 하시는 모습 정말정말 좋습니다. 저희 후배들의 본이 되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차선미님의 댓글

달달한 행복이 진하게 전해집니다. 입양이라는 행복한 감염이 우리 교회안에도 많이 옮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