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낳는다는 것-이종원(입양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9,961 2018.09.3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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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상하지만 올립니다. 아빠는 작년 장려상, 아들은 최우수상 ㅠㅠ

가슴으로 낳는다는 것

우리 가족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누가 아빠이고 아들인지 어린아이는 누구인지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우리 집 막내 주원이의 영향이 가장 클 것입니다. 저는 올해 24살이고 주원이의 오빠입니다. 주원이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 9살이고 저랑은 15살 차이가 납니다. 많은 나이 차이로 인해(?) 동생을 데리러 가면 주원이의 친구들로부터 아빠 아니냐는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그 때마다 주원이는 아빠 아니고 오빠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더군요. 제 친구들이나 아는 분들도 이렇게 주원이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너랑 되게 안 닮았다. 친동생이야?’ 라고 말하면 보통 전 ‘난 아빠 닮고 동생은 엄마 닮았어’ 다고 대답합니다. 이러면 조금 의문이 풀리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렇게 오해를 좀 받긴 해도 우리 가족은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주원이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2010년 3월, 고등학생이 되어 첫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오자, 아버지께서는 팔뚝만한 아기를 안고 계셨습니다. 주원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았지만 되게 건강해보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주원이를 쳐다보셨습니다. 그 날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주원이를 가슴으로 다시 낳아 주원이가 다시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입양얘기를 처음 꺼내셨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동생과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부모님께서는 1년 동안 입양에 대한 기도를 통해 소망을 키우셨고 결국 부모님은 입양을 결단하셨습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저는 입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그 일이 제 삶에서 일어난 후에도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학업에 치이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대학교에 가서는 밖에서 노느라, 군대에 가서는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주원이와 함께 있을 시간이 많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원이는 정말 빨리 커서 제가 주원이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는 어느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저였지만 주원이는 그냥 태생적으로 귀엽고 예쁜 아이였습니다. 사랑을 받는 재주를 타고난 아이처럼 행동하고 말을 했습니다. 어딜가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는 그런 아이입니다. 무뚝뚝하고 집에서는 잠만 잤던 저를 를 주원이는 오빠라는 이유로 참 살갑게 대해주었습니다. 항상 주원이에게 그런 것이 고마웠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주원이가 집에 온 후에 부모님은 예전에 끝났던 육아를 다시 하시느라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시는 것 같았지만 마음에는 기쁨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원이의 일거수일투족은 매일 우리 가족의 수다거리가 되었습니다. 주원이의 밝고 명랑한 성격은 우리 가족에게 끊임없는 웃음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와 주원이랑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계십니다. 제가 채워드리지 못한 부분이 큰 것 같아 씁쓸하기도(?)하지만 부모님께서도 행복해하시는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주원이와의 추억이 여럿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군복무 시절입니다. 이등병 약장을 받아 처음으로 부대 밖에 나가 가족들과 하루를 보내고 헤어지는 순간, 주원이가 저를 보면서 “오빠 가지마” 라고 하며 울었던 장면은 잊지 못합니다. 군기 바짝 들은 씩씩한 이등병인 저는 주원이의 한 마디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한 지붕아래 산다는 것이 피보다 더 진한 어떤 것을 만든 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가슴으로 낳는다는 것,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은 존재 자체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원이는 부모님이 가슴으로 낳으셨고, 우리 가족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주원이가 그것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최근에 주원이가 입양 모임에서 교육자료로 쓴 종이에 써있던 ‘버려진’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쳐서 놓고 방으로 들어가 울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종이에 쓰여져 있던 것은 입양에 대한 편견에서 나오는 잘못된 인식에 대한 예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낳아주신 부모님이 주원이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낳아서 잘 데리고 계시다가 더 좋은 환경에서 클 수 있도록 입양기관에 맡긴 것이라고 주원이에게 설명해주셨다고 했지만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주원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슬픈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종이에 써 있었던 것들이 바로 주원이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것들입니다.
저는 주원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이 주원이에게 숨기고 싶고, 생각하면 우울해지고, 남들이 혹시라도 알까봐 전전긍긍하는 그러한 것이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원이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주눅들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물론 주원이가 밝고 명랑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었고, 있어도 씩씩하게 잘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원이가 감당할 짐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있는 혈연의식은 역사적으로 아주 뿌리 깊은 것입니다.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종법 질서가 사회에 더 강력해졌지만, 혈연을 중시하던 이 관념은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여기에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입양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사회를 바꾸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원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저부터라도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어도 주변에는 입양을 잘 알리고 지혜롭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입양캠프에 갔다 왔습니다. 수년 동안 부모님이 오라고 하셨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갈 수 있는 여건이 잘 되지 않았지만 저부터도 주원이가 너무 잘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원이의 오빠로서, 잘 배우고 알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캠프에 갔습니다. 다양한 프로그램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토의 시간이었습니다. 또래 모임과 입양 사실 공개에 대한 것에 대해서 토의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게 유익했던 것은 다른 입양가정들을 눈으로 직접 보고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을 사랑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로 학교에서 친구들을 통해서 입양사실이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 학교 선생님이 실수하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시키고 전달하는 것에 또래 모임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공감이 갔습니다. 저는 주원이를 머리 속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제가 입양아가 아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 완전하게 공감해줄 수 없습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이겨내는 과정들을 같이 걸어가는 그런 또래들이 주원이에게 많다면 주원이가 입양을 슬픈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사랑스러운 동생으로만 보던 주원이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이미 이런 부분에서 잘 대처하고 계시다는 것이 느껴져서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주원이는 일찍 자기 때문에 집에 와서 보면 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질 때가 있습니다. 그냥 자기 전에도 저한테 까불고 했던 모습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터집니다. 앞으로 주원이에게 힘든 순간이 올수도 있고 어려운 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행복한 나날들을 더 그려보고 싶습니다. 올해보다 내년에는 더 클 주원이가 기대가 됩니다.
댓글목록

최덕수 목사님의 댓글

이현규 성도님 말씀대로 자존심이 상하실 만큼 종원 형제가 글을 참 잘 썼네요!^^ 주원이의 입양과 그로 인해 가족 관계 안에서 일어난 변화, 주원이를 가슴으로 낳은 동생으로 인정하기까지의 과정, 이현규 성도님과 강숙희 성도님이 주원이를 양육하는 과정에 쏟으신 수고와 기쁨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게 하는 종원 형제의 글을 통해서 입양은 희생만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는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종원 형제의 글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입양을 통해서 부어주시는 주님의 복을 경험하길 소망합니다!

이현규님의 댓글

목사님도 저에게 상처를 ㅋㅋ
자존심은 상하지만 기분은 좋네요. 목사님 가정도 강력 추천입니다. 찬우 찬영 형제 말입니다.ㅋㅋ

김지원님의 댓글

입양에 대해 관심이 있어 종원형제 승애자매님과 대화하다 종원형제를 통해 이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히 기쁘게 잘 읽었습니다. 여러 의미있던 순간의 경험들이 생생히 잘 전달되네요. 여러모로 참 유익합니다! :)

김하규님의 댓글

감동적인 글 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고 느끼며 갑니다.
감사합니다 성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