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를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8,487 2007.12.06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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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들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실감이 나고, 흥미 뿐 아니라 실제적인 유익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요일 저녁 교회사 시간을 통해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교회 역사에 대하여 배우고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참 귀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교회사를 통해서 시간적, 공간적으로 현재에 한정되어 있던 우리의 안목이 과거~미래, 한국~세계로 넓혀지며 확장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누구나 범하기 쉬운데 더 넓은 범위에서 봄으로 본질과 핵심이 무엇이고, 잘하고 잘못한 것이 무엇이지를 더 분명히 볼 수 있게 하는 유익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과거에서 미래를 아우르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예외없이 우리는 마땅이 가야할 길에서 이탈하게 될 수 밖에 없고 헤메이게 되는 존재가 우리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인 우리의 삶이지만 매일매일의 삶은 우리에게 수많은 판단과 결정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가 적지 않은 우리의 삶에서 오류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우리가 신앙의 핵심과 본질에 대한 바르고 분명한 관점을 가지는 일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교회 역사를 공부함으로 우리의 신앙이 관념으로 치우쳐 흐르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며 앞선 세대의 사람들이 범했던 동일한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고, 우리의 무지와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게 되며, 그럼에도 변함없이 신실하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함으로 그 분께 무릎을 꿇고 우리의 삶을 실제로 그 분께 의탁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헛된 일에 우리의 자원을 소모하지 않고 주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서 거함으로 우리의 삶이 주님의 일에 사용되는 의미있는 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노은경 성도님의 신앙에 대한 질문과 글을 종종 접하게 되어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런 교제가 더 활발해지고 잦아지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나누고 공감하고 조율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구요.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일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노은경 성도님 글을 읽고 공감하면서 조금 첨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요 . 모세가 돌판을 깨뜨렸던 행동에 대한 본문의 흐름은 하나님께서 모세의 행동을 부정적으로 보시지 않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32:35) 오히려 이 일은 성경이 신자가 불의와 진리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세가 므리바 물가에서 지팡이로 바위를 침으로 화를 냈던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잘못을 지적하셨고 그로 인해 모세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되겠지만 진리에 대해서,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할 수 있는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지혜와 용기 있는 사람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은혜와 능력이 우리에게 날마다 주어져서 신자에 합당한 삶을 실제로 살아갈 수 있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진리는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어가며, 사랑은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진리와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에 담겨지며 드러나는 것들이 우리가 주님께 속해있다는 확인해주는 그런 삶이 되도록 기도하며 겸손히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노은경 성도님의 글 덕분에 모처럼 글을 올리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노은경님의 댓글

장장로님 말씀이 다 맞습니다...신자라면 마땅히 불의와 진리를 구분해야겠지요. 그러나 그 분별력은 인간의 지성이 아닌 성령이 주시는 능력이라고 믿습니다. 내 자신이 과연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고 있는지, 내 자신의 지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를 살필 때에만큼 조심스러워질 때는 없겠지요...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의 의로우신 길을 따라 걸을 때에만 우리는 의롭다함을 힘입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나의 판단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할 때에 우리가 옳게 행한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판단을 버리고 하나님 뜻에 순복할 때에 옳다고 여김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중입니다...ㅎㅎ
또...인용하자면...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속성' 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 이라고 어디선가 읽었습니다..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사랑에서 끊을 수는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희들의 이러한 교제가 성도들의 한 지체됨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며, 말할 수 없는 감사함으로 여기게 된답니다.

최덕수목사님의 댓글

노은경 성도님의 답글에서 인용하신 글이 다음과 같은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내용이어서 몇 자 적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은 속성이며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이라"는 글은 사랑이란 본질 속에 공의라는 속성을 비롯해서 또 다른 여러 가지 속성들이 사랑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고, 무엇보다 사랑과 공의를 서로 다른 속성으로 대비해서 이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란 신적 본질을 사랑으로만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속성 중에 어느 한 속성을 다른 것과 대비시켜 이해하거나 분리해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랑과 공의, 오래 참음과 하나님의 진노를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거나 어느 한 쪽만을 강조해서도 안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악인을 공의의 방식으로 징벌하며, 자기 백성은 자비의 방식으로 구원하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과 오래 참으심의 속성은 한 속성 안에서 구별되거나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 예를 출애굽기 34장 6-7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인자와 긍휼로 모든 피조물에 대해 인내하시고 관용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죄를 포용하는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긍휼과 인자는 결코 불의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의를 용납하시거나 간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기에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기를 참으로 원하셨지만, 그냥 ‘괜찮다’ 하지 않으시고, 그 아들을 보내사 죄 없으신 분으로 죄를 정하여 죄값을 치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 없이, 결코 죄가 용납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 어느 한 속성을 이해할 때, 다른 속성들과 조화롭게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기는 하면서도 공의를 실행치 않는 분이시라면, 반면에 하나님이 공의로운 분이시긴 하지만 사랑과 긍휼을 베풀지 않는 분이시라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 중에 사랑이란 성품을 이해할 때 공의와 관계해서 사랑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작은 글귀 하나에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목회자의 노파심에서 올린 글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

노은경님의 댓글

예, 목사님. 섭섭합니다..저의 수준을 너무 낮춰 보셨네요. (^^) 하나님의 사랑때문에 죄를 포용하는 것으로 이해할만하지는 않은데요. 물론 두 가지를 서로 양극단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지도 않고요...
제 속에는 (하나님이 공급하시지 않으면) 어떤 의로움이나 선한 것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날마다 그 오래 참으시는 자비와 사랑 안에서 살아간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매사에 저를 그 공의로 심판하신다면 이미 이 세상에 살아있지 못하겠지요...(^^:)
에, 또...목사님의 노파심도 사랑으로 느끼며, 감사합니다~!ㅎㅎ

최덕수목사님의 댓글

혹시 조금이라도 오해가 있을까봐 올린 글이었습니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