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연구소 소장의 삶(하나님을 알아가는데 있어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6,694 2003.09.1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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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결정적 순간들]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박사학위 딴 의사의 길 접어

내가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인 1988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의과대학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전공이 환자 진료보다는 실험·연구 방면이었기 때문에 전공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서 컴퓨터를 배웠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컴퓨터 바이러스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컴퓨터가 감염됐을 정도로 피해가 컸음에도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대비책은 전무한 실정이었다.

나는 컴퓨터 초보자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공개했다. 그 결과 그 많던 바이러스는 차츰 멸종의 길을 걷게 됐다.

일단 한번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니까 이후 주변에서 계속 발견되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 나에게 해결 요청이 들어왔다. 나로서는 사명감도 들었고 보람도 느꼈기 때문에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6시까지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고, 출근해서는 하루 종일 의학 전공 일을 하는 힘든 생활을 7년 동안 계속했다.


▲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연구실에서 동료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그러나 박사 학위를 받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다음에 컴퓨터와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전까지는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지도교수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수동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시간을 쪼개서 두 가지 모두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다시 대학에 돌아간다면 이제는 능동적인 입장이 돼서 지도 학생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모든 시간을 전공에만 바쳐야 했다. 만약 대학에 돌아가서도 두 가지 모두를 한다면 모두 2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결단의 순간은 어느 날 새벽에 갑자기 찾아왔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왔던 삶은 ‘남이 보기 좋은 삶’이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서울 의대 졸업, 20대 의학 박사, 20대 의대 교수로 이어지던 순탄대로는 남이 보기에는 좋았을 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컴퓨터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자부심·보람·사명감·성취감 등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살아온 시간보다는 살아갈 날이 많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앞으로 해나갈 것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4년간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의학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후 컴퓨터 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하면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기술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의학자에서 벤처 경영자로 진로를 바꾼 내 인생의 결정적인 결단과 그때의 결심은 이후 기업 경영을 하면서 힘든 고비를 만날 때마다 나를 지켜주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안철수·안철수연구소 사장 doctorahn@ahnlab.com )

http://www.chosun.com/w21data/html/news/200309/2003090301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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