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은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게 한다.

8,242 2012.02.0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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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게 한다.

스스로 나서서 지도자가 되는 사람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추천과 신임을 얻어

지도자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지도자의 길을 가더라도 어떤 방법을 거처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는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가 좌우됩니다.


역사를 보면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세력을 얻어
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인물들은

대부분 폭군의 길을 걸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나라, 길고도 긴 역사 속에서
폭군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선정을 베풀고, 백성을 사랑한 왕보다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부와 영광을 누린 왕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백성들을 하나의 소모품으로 인정했습니다.
생명의 존귀함은 찾아 볼 수도 없습니다.
한사람의 폭군이 등장했을 때,
얼마나 많고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는 스스로

자기를 높일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로 오염된 속성을 지닌 사람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자기를 높일 수 없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스스로 높아졌을 때,
일어난 불행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역사는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시며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네 번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압살롬이 죽은 후,
서열상으로는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을 말씀하셨고
아도니야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왕위는 일찍이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제시하신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왕이 되려는

반역 행위를 한 것입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습니다.

정당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하면 백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불행해질 미래도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은 검은 안경을 끼는 것과 같습니다.
교만은 내일을 내다보는 창문에

검은 거튼을 드리움과 같습니다.


스스로 높이는 일!

스스로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명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왕상 1:5)


겸손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실천하는 당신이길...!
댓글목록

최덕수님의 댓글

교만하지 않고 진정 겸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이 글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르네요. 첫째는 스스로 자신을 높일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삶의 최우선적 목표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자기를 낮추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만을 높이고자 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때,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는 것을 우리 삶의 목적으로 삼을 때, 교만이 숨 쉴 틈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기도합니다.....

노은경님의 댓글

선택할 수 있는 물건이 두 가지만 있어도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한참 따져보고 생각해 보아야하는 우리입니다. 그 저울 그 잣대를 그대로 사람에게도 적용시키게 되지요, 부지 불식간에말이죠.  성경은 천둥소리같은 명령을 주었습니다...'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라'고요. (생각같아선...'하나님, 그게 쉬운 일인가요..?' 라고 되묻고 싶지만) 어쩌겠어요...말씀에 맞추려고 끙끙거리면서  살아가고 있는 거지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