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케 하는 고통

8,353 2012.02.17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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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캐 하는 고통



1.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들에게 선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취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천국으로 나아가게 하는 모든 것은 그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가난이 유익하다면 그들은 가난을 취할 것입니다. 만약 모욕이 유익하다면 그들은 그 모욕을 받아 들일 것입니다. 만약 여러 가지 장애와 고통이 유익하다면 그들은 이 또한 받아들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우리의 것이며, 우리의 가장 위대한 선을 이루는 데 합력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외적인 것들과 아울러 하나님 그분 자신과 함께 합니다. 위와 같은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는 통로들입니다. 하나님으로 천국과 복락을 우리에게 베푸시도록 한 그 사랑과 동일한 사랑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베푸십니다.



3. 우리의 모든 문제와 고통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우리들이 고통에 못 이겨 악에게 손을 내밀지 않도록 하나님은 너무 오래 지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125:3).



4. 사람이 한 밤 중에 이르기를 “아침이 오기나 할까?”라고 한다면 이는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까? 마찬가지로 고통과 문제 가운데 있는 사람이 그 마음에 이르기를 “오 주님, 저는 이 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일은 항상 나를 괴롭힐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역시 참으로 어리석은 말입니다.



5. 하나님은 그 자녀들을 위해 안전한 길을 택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과 함께 정죄되어 멸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으로 당신의 자녀들을 정죄하도록 용인하십니다. 세상은 그들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에서 그러한 십자가들과 불의한 일들과 갖은 모욕들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결코 그들을 세상과 함께 멸망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당신의 자녀들에게 고통을 보내시되 이 세상 안에서 이 세상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하십니다.



6. 고통에는 영광이 따릅니다. 낮이 밤을 따르는 그런 식으로가 아니라, 봄이 겨울을 따라 오는 방식으로 그리합니다. 겨울이 봄을 위하여 땅을 준비시키듯이, 거룩하게 하는 고통은 영광을 위하여 영혼을 준비시키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께서 질병을 가지고 찾아오실 때, 우리는 마음에 이르기를(수단을 사용함에 있어서) 사람들과 약을 가지고 할 일 보다 천국에서 하나님을 대면하여 할 일이 더 많다고 해야 합니다. 다윗이 직접 그리고 단순하게 하나님을 대면하여 자신의 죄악들을 고백하자, 바로 그 때 하나님은 그 죄악들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그의 몸도 고쳐주셨기 때문입니다.



8. 그리스도께서는 성도가 고통가운데 있는 바로 그때 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왜냐하면 그 때야말로 그 영혼이 믿음으로 자신을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연합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형통을 구가하는 동안에는 그 영혼이 자신의 사랑을 피조물들에게 주어 버리기 일쑤이고, 스스로를 피조물들 가운데서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결케 하는 고통에는 그리스도와 연합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은 자신의 최선의 사랑을 모아(비가 올 때 암탉이 병아리들을 그 날개 아래 모으듯) 자신의 아버지와 하나님께 드립니다.



9.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과 문제들로부터는 건져내시지 않는 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은 우리들의 영을 붙드심으로 그 고통과 문제들의 폐해(evil)로 부터 구하여 내시고, 그 문제들로 말미암아 실패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고통을 구별하여 영혼을 치료케 하시고, 작은 문제들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더 큰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건져 내시기 때문입니다.



10. 가난한 사람가운데도 여전히 그 마음이 심히 자긍하고, 교만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외적인 가난을 성별하심으로(sanctified), 참된 영혼의 가난을 더욱 진작시키십니다. 가난함으로 그들은 스스로에 대한 가장 비천한 가치를 갖게 되고, 이것은 그들을 내적으로 더욱 겸비케 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더욱더 순응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어떤 십자가 아래 있든지, 이 십자가가 어떻게 역사하는 지 주의합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되는 지 그렇지 않은지 살핍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적으로 고통 당하게 하실 때, 내적으로 우리가 더욱더 겸비하게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비케 하시고 가난케 하실 때, 우리의 영혼도 또한 가난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비케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더욱 낮추고 자긍함을 죽이도록 더욱더 힘써야 합니다.



11.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로부터 그 무엇을 거두어 가시든, 하나님은 당신께서 거두어 가신 것 보다 훨씬 더 큰 은혜와 돌보심으로 그 자리를 채우시거나, 아니면 그것을 견딜 수 있는 능력으로 그 자리를 채우십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부여하시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자녀들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겠습니까?



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로부터 그 어떠한 복락도 결코 앗아가시지 않으시고, 다만 그들에게 더 좋은 것으로 주실 뿐이라는 사실은 그분의 신성에 자리한 참된 원리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갔을 때(하나님께서 엘리사와 동행하던 엘리야를 취하여 가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에게 그의 영을 갑절이나 부어주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남편이나 부인, 혹은 자녀를 취하여 가신다면, 그분은 그들을 대신하여 더 좋은 것들로 당신에게 주십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더 이상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거룩한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13.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복된 상태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육체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들의 육체와 다를 바 없이 세상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 해서 온갖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엄청나고 거대한 죄악들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그 마음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하는 이 사람들이 하나님도 모르는 우리 보다 더 행복한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 십자가는 보면서도 그들이 쓰고 있는 면류관은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연약함은 보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은혜는 보지 못합니다. 그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비참함과 곤경은 보면서도 그들 안에 자리잡은 성령 안에서의 기쁨과 양심의 평강은 보지 못합니다.



14. 많은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 자신들에게 건강이 있기 때문에 그 건강을 악용하여 육체의 정욕, 헛된 경쟁이나 세상의 칭송을 추구하고, 자기 배만 채우는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느니, 차라리 극심한 질병의 침상에 던져지거나 하나님의 감옥에 던져지는 것이 자신들에게 천 배나 유익합니다.



15. 우리가 만약 우리의 자녀들, 부인, 그리고 친구들을 잃은 것 때문에, 혹은 우리에게 있는 어떤 고난이나 십자가로 인해 지나치게 슬퍼하고 아파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가차없이 가져가 버리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지나친 슬픔은 우리가 하나님 그분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마땅히 그래야 하는 만큼 소중히 부둥켜안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의 슬픔이 우리 자신의 죄악들로 말미암은 것이라 해도, 그런 거룩한 슬픔 조차 우리는 절제하고 알맞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한 쪽 시선은 죄악에 두고, 다른 한 쪽 시선은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봄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가장 최상의 슬픔(죄로 말미암아 아파하는)조차 알맞게 절제해야 한다면 다른 것들로 말미암은 슬픔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16. 순례자로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천국을 사모해야 할 만큼 사모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생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의 본성에 너무도 부합하여 우리는 자꾸만 그것들 곁에 조금이라도 더 머무르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져야 할 몇 가지 십자가를 가지고 우리를 따라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고통이나 십자가도 좋은 벗으로 알고 잘 동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고통이나 십자가는 우리로 이곳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에 너무 집착하고 매이지 않게 하기 위한 천상의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17. 유능한 예술가는 때때로 쓸모 없는 재료로부터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냄으로 자신의 기술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선한 열매를 따지 못할 정도로 나쁜 상황은 온 우주에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비천한 곳에 처했다고 해서 과도하게 낙담하지 않고, 부요함에 처했다고 해서 스스로 자긍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모든 상황속에서 그리스도인에 걸맞는 일관된 모습으로 알맞게 처신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자라지도 못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훈련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제대로 할 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부요하게 되면 스스로 높이고 자긍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비천한 곳에 처하게 되면, 불평과 후회로 절망하고 낙담합니다. 마치 온 세상을 붙들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섭리고 뭐고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18.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이라 할지라도 그냥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먼저 그것들을 성별하고,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격과 행동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일 안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반면에 육신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속에서 보는 것이라고는 오직 이성(reason)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 안에서도 자신을 겸비케 만드시는 하나님을 보고, 모든 것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안에는 이중적인 원리(a double principle)가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들 가운데는 육체의 거스림이 있고, 때로는 사악함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 그리스도인의 상태의 탁월함이 있는데 그것은 성령께서 마침내 그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그리스도인의 양심과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역사하기까지 그 마음과 양심을 혼자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19. 선택과 유기(하나님께서 영원전에 그 기쁘신 뜻대로 인류가운데 당신의 백성과 영원히 멸망 받을 사람을 정하신 신적인 행위, 역자주)가 그런 것처럼 하나님의 섭리 안에도 신비함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신비함안에는 심원함(depth)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고요하고, 잠잠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신경질 적이고, 날카로운지, 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가난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부자로 살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이 없습니다.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시 97:2); 당신은 그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은 구름에 가리워 계십니다. 그러나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흑암 가운데 두셔서 아무도 그분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그분은 의와 공평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이유를 모르는 그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친다 할지라도 여전히 우리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분의 경륜을 칭송하고, 우리 보다 무한히 지혜로우신 그분께 순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20. 은혜로 가득한 사람은 고요하고 평온한 때에라도 자주 스스로를 비천하게 여깁니다. 그들 안에 있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은 스스로 믿음과 인내와 사랑이 현저히 결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고난과 십자가 앞으로 그들을 불러 내실 때, 그들은 이내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온유하고 겸손한 순종의 모범으로 다른 사람들의 목전에 현저히 드러납니다.



로이드존스연구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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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임을 알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오늘 하루도 살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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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미님의 댓글

가끔은 나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로 인해 가슴저미며 울고 기도할때가 있습니다. 성결하게 살고 싶고자 하는 소원은 있으나 그 소원들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이 더 이해가 어려울때가 있습니다. 난 이런 소원을 품고 기도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고 싶은데 내 안에 죄의 유혹은 그러한 상황을 원망하게 만들고 심하게는 주님의 뜻을 묘하게 저버리고 흑암의 나락으로 나를 떨어뜨리는 참담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가난은 자족하지 못하는 탐심의 죄를 짖게 하는 유혹을 합니다.  요즘의 제가 겪는 죄의 경험들입니다.  이러한 유혹에 있는 저에게 주신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으로 받으며 성도님이 올리신 글을 읽고 갑니다.  저에게 있는 이 삶의 현실이 저를 성도로써  거룩하게 하려는 주님의 뜻임을 다시 깨닫고 가나한 맘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긴 글 성도님께서 먼저 은혜 받으시고 은혜를 나누고자 옮기신 것으로 압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둠과 혼돈속에서 아침을 시작할뻔했는데 한줄기 빛으로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감사함으로 살겠습니다.  제 삶의 형편이 어떠 할지라고 주님은 여전히 의와 공평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 이잔을 저에게서 물리치실때까지 죄의 유혹들이 저를 불신앙으로 떨어뜨리지 않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감사합니다.  성도님.  주일에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