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 부러워. 부러워. 죽겠습니다. ㅎㅎㅎㅎ
한동안 제 안에서 큰 고민거리가 하나있었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이루어져야 하는가. 지금은 좋은 교회에서 목사님과 여러 성도님들과 함께 하며 큰 은혜를 누리고 있지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제가 이 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래서 또 다른 교회를 섬기게 된다면, 옮기던지 개척을 해서든지 말입니다. 어떻게 교회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염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게 신학교 때의 고민이었습니다. 그 고민의 본질은 우리가 신학교에서 이렇게 열심히 배우는 바른 말씀과 신학을 과연 실제 교회를 이루는 일에 어떻게 적용이 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신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특별하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교회에서 배우는 것 사이에는 어떤 질적, 양적 차이가 있다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신학교를 다녀본 저는 신학교에서의 내용이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신자가 알아야할 가장 기본적인 내용들을 짧은 시간동안에 집중해서 배우는 것 정도의 차이밖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당연히 알아야할 내용들을 조금 더 일찍, 그리고 짧은 기간에 배운다는 것 말고는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교의 가르침은 차이가 없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에.. 신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았습니다. 가장 큰 도전과 깨달음은 그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신앙과 신학, 교회에 대한 전면적인 수정이 일어났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의 나의 믿음이, 나의 사고가, 내가 바라보고 이해하고 생각하던 교회가 심각한 정도까지는 아닌지 몰라도 - 사실, 어느 정도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 바른 성경의 가르침에서는 상당부분 벗어나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깨달음은 저만이 얻은 깨달음은 아니었습니다. 신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저의 동기들, 선배들, 후배들이 거의 이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주의 말씀을 바르게 배우게 되면,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정확하게 안다면, 아니 성경을 정확하고 바르게 읽기만 해도 이러한 깨우침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3년간 세상의 학문에 차단된 채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과 신학서적 속에서 살아가는 그 시간이 공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믿음, 교회에 대한 시각, 바라보던 교회상, 다들 나는 앞으로 이러이러한 교회를 세우고 섬기리라라는 개개인의 꿈과 비전, 사명을 가지고 신학교에 온 자들이 주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오류를 깨달아 알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사실, 이 과정 역시도 너무나도 처절한 싸움이자 고통이었습니다. 뼈를 깎는 것과 같은.. 최소한 제게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의 싸움에 비하면 이는 너무나도 쉬운 과정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드러난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배우고 익히며 우리 자신을 수정해갔던, - 목사로 훈련되어진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신자로 진보해나가던 우리의 그 노력들을 실제 교회에서는 전혀 적용할 수 없다라는 현실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신학교에서 이렇게 좋은 말씀, 참된 진리를 배우고 알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한 명의 목사가 아닌 한 명의 신자로서 변화되어가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우리가 정말로 사역해야 할 교회들에서는 이를 적용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을 우리는 역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러한 교회를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학교를 졸업하여 섬겨야할 교회들이 그러한 내용들을 거부하고 있다라는 무서운 현실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요즘에 누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를 가르치고, 하이델베르그를 가르쳐?", "요즘에 누가 개혁주의, 개혁교회를 교회에서 이야기해" 함께 공부한 동기, 심지어는 저희를 가르친 교수님 중의 한 분이 저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분명히 그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교회의 내용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고백서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그리고 성경 각권의 내용들 하나 하나를 우리는 배우면서 '목사가 아닌 신자로 거듭나는 변화'를 분명히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것을 적용하고 가르치는 장은, 교회는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힘들다는, 그리고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고민하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고민은 그저 한 명의 목사로서, 사역자로서 맘 편히 일어나고 생계를 보전할만한 교회를 찾지 못한다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어떤 자들은 자신의 깨달은 바를 속으로만 채우고 가는 사람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래도 끝까지 이를 붙들고 그러한 교회, 그러한 방향성을 지키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잘했고 선하고 옳다라는 생각은 어느 쪽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처한 현실에서 바르게 신자됨을 전하면 되겠다라는 격려와 위로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좌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교회를 바라보며 점점 더 희망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에 참.. 저희는 힘들었습니다.
그 때 안 교회가 신동창 집사님이 가시는 조엘 비키 목사님이 사역하시는 화란개혁교회입니다. 더 이상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교회가 사람들에게서 환영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진부한 주지주의적 신학의 산물로 조롱받는 시점에서 역으로 더욱 그 전통과 가르침을 견고히하며 그로 인하여 더욱 튼튼히 굳건히 자라나고 성장하여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 교회를 보고 저희는 엄청난 도전과 위로와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 이전까지 최소한 저는 미국에 윌로우크릭이나 새들백 같은 교회만이 영향력있는 교회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교회들이 미치는 영향력도 있지만 조엘 비키 목사님의 이 교회가 미치는 영향력은 그 보다 훨씬 더 강하고 넓게 퍼지고 있다라는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오늘날, 21세기의 한국에서 개혁교회를 세운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무모하며 엄청난 반대에 부딪치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던 저희에게 이 교회는 도전이자 모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대하여, 조엘 비키 목사님에 대하여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게 됐고 그렇게 저희는 또 다시 꿈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꿈을 가지고, 도전을 받는다고 해서 저희의 현실이 개선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학교에 다니는 전도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교회를 개혁할 수도, 교회를 세울 수도 없는 자들이었지요. 물론 어떤 동기들은 스스로 교회를 개척하여 시작한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였지요.
이제 부터는 저의 이야기입니다. ㅎㅎ. 그러한 고민에 빠진 저는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학교에서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며 불을 토하듯이 개혁주의를 말하면서도 실제로 교회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저를 본 것이지요. 제가 전에 있던 교회가 나쁜 교회였다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ㅎㅎ. 그래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11시 오전예배가 마치면 2시에 오후예배가 있었습니다. 점심 먹고 중간에 약 1시간 정도 시간이 빕니다. 이 시간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아예 점심은 굶고 아이들을 모았습니다. 지하실에 페인트 쌓아 두던 좁고 습기찬 창고를 청소했습니다. 쓸고 닦고 치우고. 그렇게 애들을 모아 놓고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가르쳤습니다. 아침에 중고등부 모임을 하고 또 모인 것이지요. 기독교 강요를 가르치고 도르트 신경도 가르치고, 하이델베르그 요리 문답도 가르쳤습니다. 애들만 오다가 조금 지나자 어른도 한 분 두 분 오시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좋아하시구요. 중고등부 졸업한 청년도 왔습니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저는 결국 그 교회를 떠나야 했습니다. 여러원인이 있었지만 교회의 심각한 어려움으로 인해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 목사님께서도 그 때 제게 권하셨고요. 그렇게 해서 저는 현산교회에 오게 된 것입니다.
현산교회에 와서. 물론 그 전부터 몇 번 와서 알았지만. 저는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왜냐면 굳이 미국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 그래도 가고 싶어요.. 신동창 집사님.... ---- 이 교회가 바로 그 교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개혁교회의 모습을 이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부질없으며 불가능한가라는 좌절에 대한 답이 바로 여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 그리고 성도들께서, 함께 바른 교회를 이뤄가고 있는 그 모습이 제게 제일 큰 도전이요 은혜요 감사였습니다. 바로 그 교회인 것이지요.
바로 그 교회말입니다.
이게 현산교회를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제 뜻대로, 제 맘대로, 제가 배우고 깨닫고 이해한대로, 제 생각대로 설교도 하고 사역도 해서가 아닙니다. 저 같은 부교역자는 교회가 허락하는 한에서만 할 수 있기에 저의 사역은 항상 조건적이 되지요. 그러므로 제 뜻을 펼치는 것이 교회를 좋아하는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사역은 전적으로 주의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조건이 되지는 않습니다.
단 하나의 이유. 현산교회가 바로 그 교회이기 때문에 저는 현산교회를 사랑합니다. 여전히 유효한 바른 말씀의 가르침과 교훈이 올바르게 선포되고, 귀한 신앙의 유산들이 교육되며 바른 신자됨이 최우선인 교회, 그리고 그 교회를 이루는 일에 모두가 뜻을 합하고 있는, 그래서 작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는 바로 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Dean Flemming 선생님이 다니셨던 교회는 수 백년의 전통을 가진 교회입니다. 신동창 집사님께서 다니실 교회 역시 그렇습니다. 4~500년의 오랜 기간의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세워진 교회들이지요. 그래서 그러한 역사적 바탕이 전무한 우리 나라에서,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그러한 교회를 세워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가 수천년이라 할지라도 그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수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가진 나라보다 단 100년의 기독교 역사를 가진 우리 나라에 얼마나 큰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나요.
저는 우리 교회를 보며 큰 소망을 가집니다. 하나는 그 4~500년된 개혁교회들 역시 그랬을것처럼 우리 교회도 이후로 한국에서 일어날 수 많은 개혁교회, 바른 교회들의 첫 씨앗이 될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개혁교회만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세워질 때에도 눈물과 고통으로 썩어간 씨앗들이 있었습니다. 수요일에 하는 교회사는 어쩌면 이 씨앗들의 역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 씨앗이리라 믿습니다.
또 하나는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신다면,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교회보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가 특별한 부흥을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도 그러한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집니다. 주께서 은혜를 주시면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
어쩌다 보니 글이 요상하게 길어졌네요. ㅎㅎ. 공공장소에 장문의 글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생각하는데.. .. ㅎㅎ. 신동창 집사님의 글 보고 부러워서 조금 오버하는 것 같습니다. ^^
하여간에. 결론은 우리 교회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람입니다. 장소나 건물, 조직이 아니라요. 그러므로, 바른 신자가 곧 바른 교회이지요. 성도님들을 사랑합니다. ^^ 부끄러버서리.......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결론은... 신동창 집사님이 너무 부럽다는 것입니다. .. . 부러워. 부러워.. 어디 적금이라도 하나 들던가 해야지.... ㅎㅎㅎㅎ
꿈에 나오던 칼빈 신학교 도서관과 신동창 집사님이 다음주에 방문하시겠다고 예고하신 Puritan Reformed Theology Seminary입니다. 부럽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그 교회인 것하고 집사님 부러운 것은 별개입니다. ㅎㅎㅎㅎ
하여간에. 집사님. 건강히 잘 다녀오시고. 사진도 많이 올려주세요. ㅎㅎ